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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지역에 위치한 전통시장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개발 제한 지역이기에 ‘시설 현대화’사업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뉴타운 지역에 묶인 시장은 전국적으로 200여 곳. 서울시만 해도 동대문구, 영등포구, 성북구, 성동구 등에 크고 작은 시장이 수십여 곳 있다. 개발이 시작되면 이들 시장은 철거대상이 된다. 상인들은 당장 생계수단을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철거되더라도 추후에 아파트 상가나 쇼핑센터로 입주하는 방안이 있다. 문제는 상가가 되면 전통시장 자격을 잃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뉴타운 상가내 전통시장을 허용해주던가 아니면 정부 지원과 관계없이 상가를 전통시장처럼 운영하면 어떨까?
영등포시장과 장위골목시장 등 뉴타운지역 상인들은 “시장이 철거되더라도 은마종합상가처럼 전통시장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파트가 새로 지어져도 서민들이 갈만한 시장이 필요하다”며 “전통시장은 신선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주민 편의시설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폈다. 도심 속 전통시장이 충분히 경쟁력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3월 29일 오전 ‘강남의 전통시장’이라 불리는 은마종합상가를 찾았다.
대형마트가 없었던 1979년도 강남 재개발의 상징인 대치동에 은마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하 상가에 전통시장 형태의 점포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지상 1,2,3층엔 옷가게와 병원, 학원 등 다른 아파트 상가와 다를 바 없이 근린생활 시설이 들어와 있다. 특이한 점은 지하 1층. 골목시장을 옮겨놓은 것처럼 분식과 이불, 야채 가게 등이 촘촘히 붙어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기업형 수퍼마켓(SSM)에 포위돼 있지만 은마종합상가를 찾는 손님은 하루 평균 3,000명이 넘는다. 차량도 2,900대가 들른다. 아파트 주민뿐 아니라 승용차를 운전해서 오는 외부 손님들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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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가 잘되니 1979년 입주해서 지금까지 운영하는 1세대 상인들도 꽤 있다. 33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풍년 떡집 한영자(62) 사장은 “도곡동에서 오는 강남 사모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근처 백화점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우리의 경쟁력은 좋은 물건이다. 보통 백화점은 공장에서 만든 떡을 갖다 쓰지만 이곳 상가 떡집들은 고객의 요구에 맞춰 떡을 만든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강남사모님들이 사먹는다는 입소문 덕에 ‘명품떡’으로도 유명해졌다. 전국단위로 배달 전화가 걸려올 정도다.
또 다른 1세대 가게인 대구 기름집에는 모피코트를 걸친 50대 여성이 들어왔다. 사장님과 안부를 주고받는 걸 보니 단골 손님이다. 사장님은 “33년 전 우리가게에 온 첫 손님인데 이사 가도 한결같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참기름 한 병을 사자 덤으로 볶은 깨 한 봉지를 건네는 모습이 영락없는 전통시장 풍경이다.
판매하는 품목이나 형태는 전통시장이지만 은마종합상가는 등록시장이 아니다. 각각의 점포들이 상가로 등록돼 있을 뿐, 시장 점포가 아니다. 은마상가 관리사무소 유경용 소장은 “서류상 정식 시장은 아니지만 손님들 사이에서는 ‘강남의 전통시장’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강남시티투어에 포함돼 외국인 손님도 늘었다. 서울 강북에서 남대문시장과 광장시장이 외국인 관광코스라면 강남에는 ‘은마종합상가’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유 소장은 “일주일에 몇 번씩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들어온다. 이들은 떡볶이를 사먹고 한복이나 이불 등을 구경한다. 강남 한복판에 이런 시장이 있다는 걸 무척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뉴타운이나 재개발이 시작되면 전통시장과 상생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시 계획안이 확정되면 조합이나 주민들 의견에 따라 시장이 ‘상가 내 허가’를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인회 등을 중심으로 시장 상인들이 한목소리를 내면 은마종합상가와 같이 상가 일부분이 전통시장 형태로 운영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도시 정비를 위해 계획된 뉴타운이 뉴타운 상가와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취재= 박모금 기자 / 사진= 양호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