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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유통업체들의 ‘전통시장 밥그릇 뺏기’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전통시장과 상생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지만 법망을 교묘히 피해 골목상권에 직격탄을 던지며 진입하는 업체들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농협과 홈플러스. 피해 지역 상인들은 “농협의 무자비한 영업망 확장과 홈플러스의 의무휴업 꼼수는 전통시장 죽이기”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5월 14일 농협을 상대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 한 달 째 상인들은 인근에 천막을 쳐 놓고 ‘농협 안심한우 반대’를 주장하고 있었다. 시장근처에 들어오는 농협 안심한우 가공업체 ‘태우그린푸드’의 입점을 막기 위해서다.
태우그린푸드는 농협의 협력업체 중 하나로 한우를 전문적으로 판매한다. 농협은 브랜드 사용료로 약 1.9~2.5%에 달하는 이익을 가져간다. 이 업체는 이달 중 시장에서 50m 정도 떨어진 빌딩에 입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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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근 마산축산물시장 상인회장(‘형제축산’ 운영)은 “정부가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고 있는데 농협은 시장 앞에 ‘안심한우’ 브랜드를 달고 상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안심한우’ 브랜드다.
이 회장은 “도축장에서 농협과 우리 시장 상인들이 똑같은 소를 가져오는데, 농협은 자기들이 구입한 물건에 ‘안심한우’라는 브랜드를 붙여서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안심한우’가 더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고, 결국 그쪽으로 손님을 빼앗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농협이 안심한우를 내세워 시장 상인들이 일궈놓은 상권을 가로챈다는 주장이다.
마장축산물시장 우육협의회 이승철 회장(‘한우세상’ 운영)도 “농협이 축산시장 앞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비도덕적인 행태”라고 꼬집었다.
그는 “농협이 비난을 피하기 위해 협력업체를 앞세워 들어오는 것이지만 실상은 농협 안심한우 판매점일 뿐”이라며 “시장 인근 1km까지 대형유통업체가 들어올 수 없는데 왜 농협만 특혜를 주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시장 조합 한기호 이사(소 부산물 취급)는 “마장시장에는 2,500여개의 점포가 있다. 단일품목으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충분히 관광 상품으로 만들 가치가 있는 시장인데 정부가 이대로 사라져가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상인들의 농성에도 농협은 침묵하고 있는 상태다. 농협은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해 시행되는 ‘의무휴업’에도 제외돼있다. 농협 하나로 마트의 농산물취급비율이 51%가 넘기 때문에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이다. 매달 둘째, 넷째 주 일요일 마트와 SSM이 문을 닫은 사이 농협은 영업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이쯤 되면 ‘농협특혜’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 3대 대형할인마트 중의 하나인 홈플러스는 ‘의무휴업’의 허점을 악용해 꼼수를 벌이고 있다. 지자체의 조례에 따라 마트들이 의무휴업에 동참하고 있지만 대형마트가 아닌 ‘쇼핑센터’로 등록된 곳은 영업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오는 5월 27일 첫 의무휴업을 시작하는 서울 양천구에서 ‘대형마트’가 아닌 ‘쇼핑센터’로 등록한 홈플러스 목동점은 영업이 가능하게 됐다.
양천구청 지역경제과 정진원 담당자는 “홈플러스 목동점은 대형마트이기 때문에 당연히 의무휴업에 동참해야 된다. 홈플러스측에 대형마트로 변경할 것을 유도하고 있지만 아직 답변이 없다”고 했다.
해당 구에 위치한 신영시장 박선종 상인회장도 “오는 27일 홈플러스만 문을 열면 오히려 손님들이 그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홈플러스는 상생을 위해 만들어진 유통법에 동참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홈플러스는 한발 더 나가 대형마트로 등록된 일부 매장까지 ‘쇼핑센터’로 변경을 준비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20일 일부 지자체에 ‘대형마트로 등록된 매장을 쇼핑센터로 변경 신청 하겠다’는 사전 알림문서를 발송했다. 경기도와 경남 등 전국 20여 곳의 지자체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한 것이다.
경남 진주시청 지역경제과 성재성 계장은 “홈플러스가 이제 와서 등록변경을 하는 것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행태”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성 계장은 “의무휴업은 소상공인, 전통시장 상인들과 다 같이 상생협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데 자기들만 영업을 하겠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다. 1년 정도 시행된 후 업체가 피해를 주장하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지만 이제 법 개정을 시작한 단계에서 ‘나홀로 꼼수’를 부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정식 신청이 들어오면 지자체에서 현지 실사를 통해 변경 등록을 하던지 불허를 하던지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변경해주는 것은 당연히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