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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능곡역 인근에 자리한 능곡 전통시장, 2012년 3월 아파트 단지 옆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서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인근 골목 상권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상인들 대부분은 망연자실 했지만 몇몇 상인들은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며 상인들을 결집시켰다. 이들은 두 달도 안돼 시장 하나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이뤄냈다.
기존의 전통시장들이 유동인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발생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매우 독특하고 이례적인 사례다.
위기감이 만들어낸 시장과 상인들의 결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이런 노력의 흔적들은 시장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데 5일장을 찾아 다니는 노점들을 상인회에서 직접 챙기게 된 것도 이런 적극적인 변화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을 비롯 인근 수도권 지역에 홍보 활동을 지자체 지원없이 상인회 자비로 충당하는 과감한 시도까지 어느 것 하나 기존 시장들이 감히 시도조차 못하는 것들을 상인들은 속전속결로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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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노력의 결실 중의 하나가 경의선 전철과 서울 지하철 벽면과 천정 광고였다.
수도권에서 보기 드문 전통 5일장이라는 것과 서울역에서 경의선 전철 20분 거리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광고는 전철 이용에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어르신들의 발길을 단숨에 시장으로 이끌었다.
흥행은 성공했고 그렇게 5일장을 한번 다녀간 어르신들은 시장을 알리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후속조치로 상인회는 시장을 찾는 이들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위해 각종 이벤트와 함께 5일장 분위기에 맞는 노점들을 유치하기 시작하였다.
상인회 말에 따르면 “능곡 5일장은 노점 유치에도 나름 원칙이 있는데 저렴한 비용(3만원)으로 노점들이 부담 없이 장사를 하게 한다는 것”이 컨셉이다. 비용 부담이 없어진 노점들이 손님에게 보다 적극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을거라는 판단이었는데 이것 역시 정확히 들어맞았다.
손님들에게 한껏 친절해진 노점들은 능곡 시장 이미지 재고에 큰 역할을 했고 특색있고 친절한 노점들이 많다는 소문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입소문으로 확대 재생산 됐다.
능곡 시장 한 가운데 마련된 천원 막걸리도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이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부담없이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도록 마련된 10평 규모의 공간에는 돼지 껍데기를 비롯 4가지의 기본 반찬이 안주로 무제한 제공되는 곳이다.
그렇게 천원 막걸리로 시장을 둘러보면서 쉬어가는 것까지 가능해지니 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늘게 되었고 그만큼 사람이 북적이는 시각 효과도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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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을 타면서 능곡 시장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극한 ‘천원 막걸리’ 덕분에 안주 무제한을 체험키 위해 일부러 능곡 5일장을 찾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젊은 세대들의 테이크 아웃 커피가 능곡 5일장에 그대로 재현된 모습이기도 한데 단지 커피가 막걸리로 그리고 세대가 중년 이상의 어르신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일련의 다양한 노력들이 시너지 효과를 만들면서 8개월이 지난 능곡 5일장은 지금은 여느 전통시장 못지 않은 활기를 뿜어내고 있고 한발 더 나아가 일산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발돋움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1980년대까지 능곡 5일장 자리가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정류장이었음을 착안하여 당시 ‘정류장 5일장’을 복원한다는 계획도 있다. 향수에 목 말라 있는 베이비 부머 세대들을 대상으로 능곡 5일장의 새로운 트레이드 마크를 만든다는 것이 상인회와 덕양구청의 생각이다.
빠르면 올 12월부터 세부 계획을 수립한다고 하니 늦어도 내년 8월쯤이면 또 하나의 명품 5일장의 탄생을 기대해 봐도 될 듯 싶다.
경의선 능곡역과 불과 100m도 안되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단순하고 명쾌한 전략이 들어맞아 능곡 시장은 새로운 도약의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