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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한 격동의 지난 4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1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임기를 마친다. 그의 말처럼 지난 4년은 격동의 시기였다.
김 총재는 임기 동안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다. '한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불통(不通)' 논란은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인사 개혁 조치로 조직의 슬림화를 꾀하며 13년만에 인사 직군제를 폐지했다.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도를 도입하고 공모를 통해 외부인력 채용을 늘렸다. 한은 최초 여성 임원(서영경 부총재보)과 고졸 출신 국장(정영택 경제통계국장)도 탄생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위상을 높였고, 글로벌화를 강조하며 한은 주최의 국제행사를 크게 늘린 점도 공(功)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국,UAE, 말레이시아, 호주, 인도네시아 같은 국가들과 통화스왑을 체결하며 원화의 국제화에도 기여했다는 평도 듣는다.
하지만 불통 문제는 임기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지난해 5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시장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동결 시그널을 주고도 금리를 인하해 시장에 혼란을 줬다는 것이다. 2010년 하반기엔 금리 인상 시그널을 주고 동결해 '동결 중수'라는 별명까지 붙었었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의 반복은 결국 시장의 무관심으로 돌아왔다.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 직후 김 총재의 설명회가 있는 시간에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류현진 등판 중계를 보러 가는 채권시장 관계자가 있다는 굴욕적인 말도 나왔다.
사실 김 총재는 누구보다 말을 많이 하며 소통을 꾀한 사람이다.
취임직후 첫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도 소통을 강조했다. 대·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와 비은행 금융기관 CEO 및 협회장은 물론 투자은행 전문가와의 간담회를 신설, 총재가 직접 참여했다. 기회가 있을 때 그 누구보다 많은 말을 하고 다양한 정보를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고 어려운 말로 듣는 이들의 혼란을 줬다는 지적도 있다. 듣는 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도 많았다.
실제로 김 총재는 "설득(convince) 시키지 못하면 혼란(confuse) 시키겠다"는 말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경제는 항상 한 쪽(only one hand), 그리고 반대쪽(on the other hand)"이라며 "내가 설득을 못 시킬 경우에는 다른 쪽으로 가지 않도록 붙잡아 놔야지요"라고 해명했다.
그는 불통 논란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그 와중에 "한편에서는 전달하는 내용과 방법이 주요하지만 받는 사람의 이해도가 전제가 된다"며 듣는 입장이 이해해야 소통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설득시키지 못한 책임을 듣는 사람에게 전가시킨 셈이다.
4월 한은은 이주열 총재를 수장으로 맞아들여 새롭게 출범한다. 시장은 김 총재의 과오로 여겨지는 불통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개혁과 글로벌화라는 분명한 성과가 있기에 김중수 총재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