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근절'·'내부통제 철저'·'사람 관리' 성공해야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재난을 계기로 '국가개조'에 착수하겠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9일 대국민사과에서 한 발언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 이후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사 역시 전면 개조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계속되는 금융사고로 금융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은 분명한 위기이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를 위해 3가지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모피아 낙하산 인사 근절', '내부통제의 확대', '직원 관리 강화'다.

◇ '모피아' 낙하산, 이제는 사라져야

'모피아', '금피아'라는 단어가 있다. 각각 옛 재무부(지금의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를 '마피아'와 합성해 일컫는 단어다. 둘을 합쳐 '관피아(관료+마피아)'라고도 한다.

이런 단어가 생긴 이유는 해당 인사들이 퇴직 후, 소위 '낙하산 인사'를 통해 금융기관 수장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금융권을 쥐락펴락하는 현상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인사들은 이런 '모피아', '금피아'가 금융권을 장악하는 것이 대한민국 금융권을 수렁에 빠뜨리는 원인으로 지목한다.

다행인 점은 최근 금융당국이 모피아의 금융기관장 이동을 적극적으로 막고 나섰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여파로 공직사회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 예고되면서 이 같은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는 관료 출신들이 금융기관장이 되는 것은 원천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공무원은 무조건 정년까지 버텨야 하고, 그 후 무슨 일을 할지를 미리 고민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모피아들의 금융기관 이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모피아 낙하산 논란이 불거진 탓이다. 심지어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같은 금융공공기관장도 민간 출신이 차지할 만큼 모피아의 위세는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 '내부통제' 강화 없인 '금융개조' 불가능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금융당국은 '내부통제'의 필요성을 수차례에 걸쳐 강조해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내부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금융사는 CEO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30일 신 위원장은 각 금융사 준법감시인들을 만나 내부통제에 대한 비공개 간담회를 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의 으름장이 통했는지, 시중은행들은 내부통제 챙기기에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환은행은 내부통제TFT를 신설, 매달 회의를 열기로 했다. 주목할 것은 회의를 소집하는 주체가 김한조 행장이라는 점이다. 내부통제를 은행장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들도 각각 결의대회를 통해 내부통제 강화를 선언하고 직원들의 경각심 높이기에 나섰다.

내부통제 강화의 한 방법으로 일부 시중은행들이 보안 강화에 나선 것도 주목할 만하다.

외환은행과 국민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은 본점 출입 시 노트북 PC와 USB 저장장치의 반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임직원 등 근무자의 PC 등 반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출입기자 등 외부인사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외환은행은 보안 스티커를 부착하고, 국민은행은 반출입 PC 목록을 장부에 기재하고 출입 시 직원을 동행시키는 등 혹시나 벌어질 수 있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 '사람 관리'가 최고의 사고 예방책

'금융개조'를 위해서는 '직원관리강화' 역시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금융사고들은 해킹 등의 기술적 방법으로 외부인이 일으킨 사고가 아니라, 내부 근무자들이 일으킨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지적에 힘이 실린다.

'직원관리강화'란 무조건 직원을 통제 등으로 압박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지나친 실적압박 관행을 없애 불완전 판매 등을 예방하고, 승진 경쟁에서 밀려난 4~50대를 위한 배려를 통해 '한 탕 크게 해먹고 나가자'는 생각을 않도록 하는 등 세심한 '케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시중은행장들은 최근 계속되는 금융사고와 신뢰 추락의 원인으로 '지나친 실적 위주 평가'를 꼽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도덕성이 약해지는 가운데 영업에만 몰두했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실적을 강요하는 분위기와 은행원들의 사고가 수익 중심으로 변했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단기 실적만 중요시한 반면, 장기목표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다"고 각각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실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이런 사태를 낳았다고 입을 모은 셈이다.

'승진 포기자'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발생한 금융사고 대부분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은행원들이 야기한 것으로 집계된다. 은행 급여 체계는 승진할수록 후하게 주는 대신, 승진하지 못한 자에게는 박하게 주는 구조다. 승진을 포기한 행원들은 '딴 생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지점 근무자는 "부지점장급에서 지점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하늘이 별 따기"라며 "특히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승진하고, 월급도 많이 받아갈 경우, 자의든 타의든 승진에 대한 꿈을 접게 된다. 이 경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한탕 크게 저지르고 나가자'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