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밀려날 몸, 어디 한 번'… 고령 행원 '막다른 길' 터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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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시중은행 발 금융사고가 잇따르면서, 내부통제의 부재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당국이 연일 내부통제 강화를 강조하고 은행들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통제는 여전히 허술한 상태다. 이와 관련, 제대로 된 통제를 위해서는 '승진 포기자' 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기업은행 너마저'… 내부통제 부재 점입가경
시중은행의 금융사고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IBK기업은행 직원들이 은행 돈을 마음대로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적발 금액만 놓고 볼 땐 타 은행에 비해 매우 적은 수준이다. 하지만 고객이 맡긴 돈을 은행 직원이 마음대로 썼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기업은행으로부터 직원 시재금 유용 및 횡령 등 1억5천만원 규모의 비리에 대한 자체 감사 결과를 보고받았다. 연루 직원들은 모두 면직됐으며 일부 직원은 고발 조치됐다.
기업은행은 내부 감사 과정에서 지난해 A지점과 B지점 직원이 각각 320만원과 10만원의 시재금을 횡령한 사실을 발견했다.
시재금이란 고객에 돈을 지급하기 위해 은행 지점 창고에 보관한 돈으로, 시재금 횡령은 창구 직원이 자기 주머니로 챙겼다는 의미다.
기업은행 C지점 직원은 시재금 2000만원을 유용했다가 적발됐다. 은행 돈을 다른 곳을 보냈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
D지점 직원은 1억2600만원의 무자원 선입금 거래를 하다가 적발됐다. 무자원 선입금 거래란 돈이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입금된 것처럼 꾸미고 실제 입금은 나중에 이뤄지는 수법을 말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소액의 시재금 횡령이나 유용은 다른 시중은행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라면서 "연루 직원의 경우 금액의 적고 많음을 떠나 일벌백계 차원에 모두 면직했다"고 말했다.
◇ 결의대회도 좋지만… '승진 포기자' 관리 절실
지난 15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장회의에서 최근 금융권의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사고들에 대해 사건 재발 시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앞으로 금융사고가 빈발하는 금융기관에는 금감원에서 상주 검사역을 배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알아서 시정하지 않으면,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서 밀착 감시하겠다는 경고인 셈이다.
내부통제 부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동시에 금융당국에서도 칼을 빼들고 나서자, 은행권에서는 이를 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KB금융지주는 지난 18일 일산 KB국민은행 연수원에서 임직원들이 모인 가운데 '위기극복 대토론회'를 열었다. 임영록 KB금융 회장, 이건호 국민은행장 및 계열사 CEO 등이 함께 밤샘 토론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은행도 임직원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윤리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윤리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고 24일 개최했다.결의대회는 24일 개최한 영업본부장회의에서 임원들 결의를 시작으로 28일까지 전국 영업점으로 확대해 전직원이 동참할 예정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사고를 줄이고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선 결의대회 같은 캠페인성 행사 외에 현실적인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다. 현실적 대책으로 꼽히는 가장 대표적인 예 중 하나는 '승진 포기자'에 대한 배려다.
최근 발생한 금융사고 대부분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은행원들이 야기한 것으로 집계된다. 은행 급여 체계는 승진할수록 후하게 주는 대신, 승진하지 못한 자에게는 박하게 주는 구조인 탓에. 승진을 포기한 행원들은 '딴 생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지점 근무자는 "부지점장급에서 지점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하늘이 별 따기"라며 "특히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승진하고, 월급도 많이 받아갈 경우, 자의든 타의든 승진에 대한 꿈을 접게 된다. 이 경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한 탕 크게 저지르고 나가자'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고 털어놨다. 고령 행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