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의 파란만장한 역사·정신이 살아 있는곳
주택 공시가격 26억선 이지만 "돈으로 환산 불가능"
王회장 생전 사용하던 쇼파·17인치 TV 등 그대로 보존
관리인 "마치 정 명예회장 지금도 살고 있는 듯하다"
  • ▲ 철창살 대문으로 굳게 닫혀 있는 정주영 명예회장 생가ⓒ뉴데일리
    ▲ 철창살 대문으로 굳게 닫혀 있는 정주영 명예회장 생가ⓒ뉴데일리

     


    서울 청운초등학교 뒷편 언덕길을 따라 5분가량 걸어 올라가다 보면 2층 양옥집이 나온다. 이 집의 외곽에는 적당한 크기의 막돌로 자연스럽게 잇댄, 어른 키보다 2~3배쯤 높아 보이는 담장이 둘러쳐져 있어 밖에서는 안이 거의 들여다보이질 않는다.  

    이 저택에는 큰 대문과 쪽문이 있는데, 철제로 만들어진 큰 대문의 틈 사이로 수십년은 돼 보이는 소나무가 보인다. 담장 너머로도 고목이 담장 안쪽을 따라 심어져 있어 자연스럽게 외부에서 집을 볼 수 없게 만들어져있다.

    이곳은 막다른 길 끝에 위치해있어 한적하고 인적이 드물다. 새들이 조잘조잘 지적이는 소리가 오히려 소음이 될 정도로 고요한 이곳은 청운동 55-15번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생가다.

    현재 이 집은 지난 2007년 8월 변중석 여사가 타계한 이후 비어 있는 상태다.

    가족 중 이 저택에 따로 거주하는 사람은 없지만 정 회장의 제사가 열리는 날과 변 여사의 기일 때마다 범 현대가(家)가 집결해 제사를 지내왔다. 정 명예회장 저택은 아직까지 범 현대가(家)를 묶어주는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청운동 55-15, 풍수학에서 명당으로 꼽는 곳

    '우리 집은 청운동 인왕산 아래 있는데 집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서있고 산골 물 흐르는 소리와 산기슭을 훑으며 오르내리는 바람소리가 좋은 터이다' 정 명예회장은 1998년 펴낸 자서전에서 청운동 자택을 이렇게 소개했다.

    사주팔자나 운도 믿지 않는다는 그가 유난히 터를 들먹이는 것은 세인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현대 왕국'을 일군 곳이니 정 명예회장에게도 청운동 저택이 '터가 좋은 집'임을 재차 강조할만 하다. 

    풍수지리에서는 터가 좋은 곳을 명당이라고 한다. 정 명예회장 저택은 일반주택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외관상 평범해 보이지만 인왕산 중턱에 자리잡은 이 집은 풍수학에서도 명당으로 꼽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풍수전문가들에 따르면 정 회장의 집터는 '소가 누워서 음식을 먹는 와우형'의 명당이다. 소는 성질이 순한 동물로 한 집의 농사를 도맡아 지으며 누워서 음식을 먹는다. 따라서 이 터는 나라를 경영할 큰 인물을 낳고 자손대대로 재산을 누릴 큰 부자가 태어날 땅이라는 분석이다.

    ■ 현재 주택 공시가격…돈으로 환산할 수 없어

    집 규모는 꽤 큰 편이다. 대지면적만 1563㎡가 조금 넘는다. 주택은 2개동인데 본채와 부속건물이 'L'자 모양으로 배치돼 있다. 둘 다 지상 2층 규모로 연 면적을 합치면 (건물면적) 650㎡ 쯤 된다.

    이곳의 땅값은 정 명예회장이 최초로 소유권을 등기한 이후 꾸준히 뛰었다. 현재 1㎡ 당 공시지가는 약 240만원(2014년 5월 30일 공시지가 기준)으로 20여년 간 4배가량 올랐다.

    청운동에서 부동산 중개인을 하는 김씨에 따르면 "(정주영 생가는) 매물로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매매시세는 알지 못한다"라면서도 "(정주영 생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라고 설명했다.

    굳이 매매가를 책정하자면 주택 공시가격 26억8000만원(2014년 1월1일 공시가격 기준)에 정주영 생가라는 프리미엄이 붙어 70억원 선에서 거래될 수 있을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 ▲ 정주영 명예회장 생가 근처에 위치한 경복고등학교ⓒ뉴데일리
    ▲ 정주영 명예회장 생가 근처에 위치한 경복고등학교ⓒ뉴데일리

     



    ■ 현대가(家) 경복고 출신이 많아

    현대 일가의 면면을 살펴보면 유독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등 6명이 모두 경복고 동문이다.

    한 가문에서 6명의 동문이 탄생한 이유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사회 유력 인사들이 대거 이 학교를 나왔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학연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사회 특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돈다.

    하지만 그 중 '청운동 저택과 학교 간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설득력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 경복고의 위치는 현대가의 둥지인 청운동 저택과 멀지 않다. 경복고는 청운동 저택에서 1k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어른의 걸음걸이고 10분 안팎으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인지 경복고 출신 총수 일가 중 가장 출신이 많은 곳이 현대가다.

    ■ 청운동 저택에서 계동 현대사옥까지

    청운동 저택과 계동 현대사옥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저택과 사옥 간의 거리는 2.6km로 걸어서 40분 거리다.

    정 명예회장은 매일 집에서 계동 현대사옥까지 걸어다녔다고 한다. 어김없이 새벽 6시면 청운동 저택을 나섰고 정몽구 현대차 회장, 정몽준 전 의원 등 자녀들과 계동 현대사옥까지 도보로 출근했다.

    그러다보니 구두 밑창이 일찍 닳았고 이를 늦추려고 징을 박아 신고 다녔다는 일화는 오늘날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정 명예회장은 살아 생전 "항상 소풍 가는 기분으로 출근한다"고 말하곤 했다. 골치 아픈 일도 많았겠지만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청운동 저택을 나섰던 그였다.

    ■ 현재 내부의 모습은?

    현재 이 저택에는 정 명예회장이 생전 사용했던 20여년 전 쇼파와 17인치 TV 등 가재도구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후손들이 살림도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청운동 저택을 관리하는 관리인에 따르면 △옛 금성사의 '골드스타 TV' △정 명예회장이 즐겨보았다는 비디오테이프 △생전에 입던 양복과 재킷 등 아직 정 회장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밖에도 정 회장이 쓰던 △침대와 이불 △셔츠·스웨터·양말까지 그대로 보관돼 있다.

    관리인은 이에 "마치 정 명예회장 지금도 살고 있는 듯하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 王회장 생가 기념관 추진 중

    현재 정몽구 회장 소유인 이 집을 정 명예회장 기념관으로 만드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저택 기념관에는 고인이 쓰던 22년된 구두와 TV, 책상 등 숨결이 담긴 유품과 집기들이 전시돼 고인의 검소한 생활방식을 후세에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창업주의 생존 거주 주택은 생가와 함께 해당그룹의 성전이나 다름없다"며 "고인을 기억하고 생전 근면검소했던 창업주의 인생철학과 경영철학 등이 담겨 있어 그룹 총수들이 그대로 보존,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인의 생애에 초점을 맞춘 기념관 건립을 구상 중이며 아직 구체적인 방법과 시행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