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부회장, 할아버지 기일때 가장먼저 오고 항상 참석정주영의 밥상머리 교육으로 근면과 성실 다져할아버지 '황소 추진력'-손자의 '뚝심 리더십' 닮은꼴"현장서 쓰러져라" 가르침 물려받아 정 부회장도 '현장경영' 중시재널오너 지만 소탈한 성격에 예의바른 노력파로 통해
  •  


    지난 20일 종로구 청운동 55-15번지에 위치한 저택 앞엔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굳게 닫힌 철창살 대문 안팎으론 경호 요원의 경비가 삼엄했다. 사진기자들은 대문 앞에 진을 치고 저택을 향해 연방 셔터를 눌러대면서 막바지 점검에 심혈을 기울였다.

    시끌시끌한 분위기 속, 묘한 긴장감이 어우러진 이곳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부인인 고 변중석 여사가 생전 30년 이상 살았던 곳이다. 

    이날 정주영 14주기 기일을 맞아 범(凡) 현대가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예정이었고 기자들은 가족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날 6시 25분께 오르막길 끝에서 검은색 에쿠스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었다. 검은 양복차림의 엄숙한 표정인 그는 아내와 두 딸을 동행한 채 집안으로 들어섰다. 현대가 2~3세 가운데 가장 빠른 등장 이었다.

    청운동 저택 관리자는 "정의선 부회장은 기일마다 가장 일찍 오는 편"이라며 "지난해 기일에도 6시 10분 쯤 도착해 제일 먼저 입장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기일이면 매번 빠지지 않고 찾아 온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의선 부회장의 조부 사랑이 남다르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 정 부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2남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외아들로 정주영의 손자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정주영과 보냈다. 이에 정 부회장은 선대 회장 정주영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정주영의 밥상머리 교육으로 다져진 근면과 성실

    정 부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어렸을 때부터 아침식사를 같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침식사 만큼은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이 정주영의 원칙이자 교육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정 명예회장의 밥상머리 교육이 정 부회장의 인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현대가의 손자 중 가장 먼저 정 부회장을 대상으로 밥상머리를 교육했다고 한다. 매일 새벽 서울 청운동 본가에서 집안 어른들과 아침 식사를 하며 자연스레 어른을 공경하고 남을 배려하는 기본예절을 배우고 도덕성 등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때부터 유교적인 법도가 몸에 벤 정 부회장에게 성실과 겸손은 생활 습관 그 자체였다.

    또 정 명예회장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정 부회장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길들였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아침 식사 시간은 새벽 5시였다. 이 철칙을 지키기 위해 정 부회장 역시 아침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근면과 성실은 그의 성품이 됐다.

    정 부회장은 결혼 후에도 청운동에 와서 정 명예회장과 같이 아침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의 정 명예회장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정주용의 '황소 추진력'-정의선의 '뚝심 리더십'


    정 부회장을 직접 대면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가 "겸손하고 남에 대한 배려심이 많은 성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경영인으로서 추진력은 할아버지와 닮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좋은 사람이면서도 매우 이성적이고 꼼꼼하고 차분하다"면서도 "추진력에 있어 저돌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선대 회장과의 닮은꼴을 설명했다.

    실제 남들이 우려하던 '디자인 경영'을 과감히 밀어 붙였고 이후 디자인 경영을 녹여낸 야심작 'K-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기아차의 중흥기를 열었다는 평이다.

    확신이 서면 밀어붙일 수 있는 뚝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 정 부회장에게서 조부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재널오너 지만 소탈한 성격에 노력파

    정 부회장은 국내 최대 재벌가 오너 3세지만 그에게 따르는 수식어는 서민적이다. '소탈, 노력파, 겸손, 예의바름'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정 부회장은 소주를 즐기고, 김치찌개와 냉면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소박함과 건실함은 정주영 스타일과 비슷하다는 평이다.

    정 명예회장도 현장 사람들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며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릴적부터 그런 할아버지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아서인지 정 부회장도 '후광이 빛나는 재벌 후계자'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정 부회장의 지인들은 그를 가리켜 "특별히 튀는 구석이 없었던 학생이었다"고 설명한다. 그가 재벌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것도 그를 알고나서 한참 뒤였다고 한다.


    "현장에서 쓰러져라" 가르침 물려받아 정의선 부회장도 '현장경영' 중시

    정주영 명예회장은 중요한 현장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았다고 한다. 그만큼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였다. 오죽했으면 "현장에서 쓰러져라"라는 말을 남겼을까.

    이와 같이 정의선 부회장도 현장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 부회장은 최근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녀오고 있다. 지난해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현장 점검에 나서며 인도와 터키 현대차 현지공장에 들러 공장 시설과 함께 판매 현황을 점검했다.

    정 부회장의 이런 행보는 현장 상황을 중시하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한 업계에서 정 부회장의 업무 처리 스타일은 아주 꼼꼼한 편으로 자신의 일은 절대 남에게 떠넘기는 법이 없기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현장을 보고 소통하는 것도 정주영 명예회장과 빼다 닮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날 정 부회장은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대신해 14주기 제주(祭主)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