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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경총회장과 김동만 한노총위원장이 노사정 콜라보레이션에 실패했다. 두 사람간의 남다른 인연과 신뢰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끝내 벽을 넘지 못했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한노총이 8일 노사정 결렬을 선언하자 재계를 대신하는 경총도 "5대 수용불가안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옵션"이라며 맞서 노사정 대타협은 사실상 물건너갔다.
'노사정 대타협'의 핵심 파트너인 두 사람은 8년전 인연을 시작했다. 2007년 3월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박병원 회장이 우리금융회장으로 낙점되자 우리은행(옛 한일은행) 노조를 거쳐 금융노조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동만 위원장이 거세게 반발했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지만 두 사람은 이때부터 서로에게 깊은 신뢰를 받았다고 회고한다. 52년생과 59년생으로 7년간의 연배차가 있었지만 부산과 마산으로 출신지역도 비슷한데다 뚝심과 소신, 고집, 원칙 고수 등에서 닮은 점이 많았다.
박 회장은 관료출신으로 보기 드물게 할 말은 꼭 하는 미스터 '바른소리'였고 해병대 출신의 김 위원장은 2000년 은행 총파업을 주도하며 강단있는 모습과 함께 2007년부터는 노총의 대외협력 업무를 도맡으며 유연한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2012~2014년에는 은행연합회장과 한국노총 부위원장·위원장으로 얼굴을 맞대며 협상을 벌였다. 둘 사이에서는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쓰기로 합의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도 괜찮았다.
박 회장은 합리적인 노조 주장에 대해 '비정규직 전환기간 단축' 등으로 응답했고 김 위원장은 '노사공동의 사회공헌기금' 마련으로 화답했다.
지난해 말 김 위원장이 노총위원장으로 당선되면서 한노총이 강성으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올 1월 '2015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노동계를 대변해 처음 참석하며 화합의지를 보였다.
지난 2월, 1년 이상 공석이던 경총회장에 박 회장이 선임되자 김 위원장과의 오랜 인연이 우선 고려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박 회장은 "쉽고 좋은 자리만 하지 않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비록 김 위원장이 "서로를 잘아는 것과 교섭은 별개"라며 선을 그었지만 기대는 숨길 수 없었다.
둘은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도 공식석상에서는 날을 세웠지만 사석에서는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살가운 모습을 자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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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환상의 조합을 선보이던 두 사람도 끝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노동개혁 대명제를 실천하지 못했다. 각각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야하는 처지에서 해고와 취업규칙 등 받아든 숙제가 너무 버거웠다.
여기에 눈치없는 정치권과 기재부 등이 훼방을 놓기도 했다. 박 회장은 지난 6일 정치권이 앞장서 정년 60세 연장 등을 띄우는 바람에 김도 빠지고 노동계를 설득한 명분도 줄었다고 투덜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말부터 기재부가 노사정위에 앞서 중규직과 임금피크제 등 간보기에 나서는 바람에 사안을 더 어렵게 꼬아놓았다고 비판했다.
다시금 정치권으로 넘어가게 된 노사정 대타협. 두 사람이 막판 멋진 케미를 선보이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