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병원 못간게 흑자 원인...보장 늘려야
  • ▲ 정부가 15조가 넘는 건강보험 흑자 딜레마에 빠졌다. 내년 일몰예정인 특례연장 중단을 검토하고 있지만 반대의견이 만만치않아 궁리를 거듭하고 있다ⓒ뉴데일리 DB
    ▲ 정부가 15조가 넘는 건강보험 흑자 딜레마에 빠졌다. 내년 일몰예정인 특례연장 중단을 검토하고 있지만 반대의견이 만만치않아 궁리를 거듭하고 있다ⓒ뉴데일리 DB

     

    정부가 올해 말이면 흑자규모가 1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축소를 본격화하고 나섰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파동에 이어 또한번의 격랑이 일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KDI와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지원 연구'에 대한 수의 계약을 체결했다. 보건복지 관련 연구 주제로는 건강보험 국고지원 합리화 방안이 우선 선정됐다. 앞서 지난해말 기재부는 '2015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내년 일몰예정인 국고지원법을 거둬들이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재부는 또 12일 열리는 5개부처 합동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건강보험이 5년 연속 흑자행진을 하고 있는데다 담뱃값 인상으로 국민건강증진기금 수입도 크게 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일반 예산으로 돌려 치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 ▲ 건보 흑자 원인을 두고도 입장은 크게 엇갈리다. 시민단체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게 주원인이라며 오히려 보장성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연합뉴스
    ▲ 건보 흑자 원인을 두고도 입장은 크게 엇갈리다. 시민단체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게 주원인이라며 오히려 보장성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연합뉴스

     

    건보 재정은 2013년 3조6446억원, 지난해 4조5869억원 흑자를 내 2년 연속 건보공단 자체 추정치의 두 배에 가까운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2011년부터 계속된 누적 흑자 규모는 지난해 12조8072억원까지 불어났고 올해는 15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은 일반 국민으로부터 걷는 보험료에서 80%, 정부 일반 회계 지원에서 14%, 담뱃값에서 떼내는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6%씩 수입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5.99%이던 보험료율이 올해 6.07%로 올랐고, 담뱃세 인상에 따른 건강증진부담금 지원액도 지난해보다 5000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올해 역시 2조원대 흑자가 확실해졌다.

     

    여기에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간 정부가 미지급한 국고지원금 8조4462억원을 더할 경우 누적 규모는 23조원을 훌쩍 넘는다.

     

    정부는 사정이 이런만큼 내년말 일몰 예정인 '재정건전화특별법'을 중단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 특별법은 건보 재정이 악화됐던 지난 2002년 보험료 가운데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5년 한시법으로 제정했다. 이후 2007~2011년에는 보험료 예상 수입 20%를 국고로 지원하는 방안을 건강보험법에 반영했고, 2012년부터 5년간 동일한 내용의 특례를 다시 적용했다.

     

    기재부는 올해 세입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33조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할 만큼 국가재정이 어려운 형편에서 단기 상품만 운용하는 12조원대 건보 재정을 그냥 두는 것은 재정효율성 측면에서 불합리하다고 강조한다.

     

  • ▲ 흑자 용처를 두고도 정부는 고령화 대비한 보장용으로, 시민단체는 보장확대를 요구한다ⓒ연합뉴스
    ▲ 흑자 용처를 두고도 정부는 고령화 대비한 보장용으로, 시민단체는 보장확대를 요구한다ⓒ연합뉴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급속한 고령화와 보장 범위 확대로 조만간 다시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며 계속 국고 지원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4대 중증질환 보장 강화, 3대 비급여 해소, 2014~2018 중장기 보장성계획 이행 등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며 아예 한시법을 상시법으로 바꾸자고 요구하고 있다.

     

    보건관련 시민단체들도 같은 입장이다. 전국의사총연합은 "지난 몇 년간 건보재정이 흑자를 기록하고 재정적립금이 12조에 달하자 정부가 슬그머니 국고지원금의 규모를 줄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우려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국민 건강과 보건, 의료에 대한 국가 책임을 위해서 법안의 연장뿐 아니라 기존의 14% 국고지원금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건강보험 흑자를 보장성 강화에 써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엇갈린 입장은 흑자 원인과 사용처를 놓고도 상반된다. 정부는 건보흑자는 그동안의 예방노력의 성과라며 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의료비를 대비해 놓아야 한다며 타 용도 사용을 경계하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최근의 흑자추세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못하는 서민들의 체감 불경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며 보편적인 보장성 강화와 의료비 절감용도에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래저래 정부는 건보료 재정지원에 대해 손을 보겠다는 입장이어서 또 한번의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