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장관 職을 걸고 재추진해야...
  • ▲ 정부가 또다시 말을 바꿔 건보료 개편 재추진에 나서기로 했다. 차제에 문형표 복지부장관이 직을 걸고 임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뉴데일리 DB
    ▲ 정부가 또다시 말을 바꿔 건보료 개편 재추진에 나서기로 했다. 차제에 문형표 복지부장관이 직을 걸고 임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뉴데일리 DB

     

    정부의 오락가락 갈 지(之)자 행보에 건강보험 개혁이 끝내 산통마저 깨질 모양새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하겠다던 기획단은 사실상 공중분해됐고 정부는 명분과 신뢰를 모두 잃었다.

     

    18개월동안 기획단을 이끌어온 이규식 위원장은 "더 이상 이 정부에 기댈 것이 없다"며 사퇴했고 15명 나머지 위원들은 "설명의 자리를 갖겠다"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오찬 요청을 거절했다. 이 와중에도 정부는 연일 연소득 500만명이하 저소득층 건보료 인하 등 땜질 처방에 나서고 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정부가 45만명의 부자 직장인 심기를 살피려고 600만명에 달하는 저소득 지역가입자 쥐어짜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급기야 여론에 밀린 정부가 3일, 논의중단을 선언한 이후 6일만에 다시 재추진의사를 밝혔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 ▲ 1년6개월간 건보 개혁을 논의해 온 기획단은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 중단에 멘붕에 빠졌다ⓒ
    ▲ 1년6개월간 건보 개혁을 논의해 온 기획단은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 중단에 멘붕에 빠졌다ⓒ


    ◇ 왜 무산됐나

     

    지난달 28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격적으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개선 논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기획단이 1년6개월 동안 준비한 발표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기획단 누구도 사전에 이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규식 기획단장은 "사전에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말했다. 의욕을 보이던 주무장관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 것은 청와대를 다녀온 직후다.

     

    정부 관계자 전언은 담당 수석을 통해 비서실과의 논의과정에서 없던 일이 됐다고 한다. 담뱃값에 이은 연말정산 논란에 건보료 인상까지 더해지면 대략 45만명 쯤으로 추산되는 급여외 별도의 소득이 있는 부자 직장인들의 불만을 달랠 길이 없다는 것과 발표시점이 좋지 않다는게 주된 이유였다.

     

    비판이 거세지자 청와대와 정부는 시뮬레이션을 다시하자는 것 뿐이라며 재검토의사를 밝혔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발표시점의 문제가 결국 건강보험 개혁의 당위까지 묻히게 만든 셈이 됐다.

     

  • ▲ 이규식 기획단장은 정부가 한 해 5700만건에 달하는 민원을 외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뉴데일리 DB
    ▲ 이규식 기획단장은 정부가 한 해 5700만건에 달하는 민원을 외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뉴데일리 DB

     

    ◇ 개혁 핵심은..."소득있는 곳에 건보료 있다"

     

    이번 건강보험료 개혁의 핵심은 "소득있는 곳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2011년 기준 직장가입자의 세대 당 소득은 3859만원, 건강보험료는 월평균 9만2565원 수준이다. 직장가입자 덕분에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피부양자만도 2048만명에 달한다.

     

    전체 건보 가입자의 41%가 무임승차자다. 이 중 이자·배당·연금·사업 등 종합소득이 있는 사람이 233만명이다. 연금뿐만 아니라 다른 소득까지 합쳐 2000만원이 넘는 사람도 19만명을 넘는다. 송파 세모녀도 5만140원의 보험료를 내고 소득 한 푼 없는 노부부도 집이 있다는 이유로 13만5000원의 보험료를 냈지만 이들은 보험료 '0'원의 승차자들이었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전체 지역가입자 758만9000세대 중 77.7%인 599만6000세대가 연간 소득이 500만원도 안되는 노인가구나 영세 자영업자, 부녀자 가정이었다. 이 중 402만4000세대는 아예 소득이 전혀 없었지만 직장 최저보험료 1만6480원의 2~3배에 달하는 부담을 안아왔다.

     

    그래서 개혁단은 소득중심으로 부과체계를 바꾸고 근로소득, 사업소득, 2천만원 초과 이자·배당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 등 종합과세소득을 보험료에 반영시키기로 했다. 부담능력이 있는 피부양자에 대한 인정기준도 강화하고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는 월 1만원대의 정액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했었다.

     

     

  • ▲ 이규식 기획단장은 정부가 한 해 5700만건에 달하는 민원을 외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뉴데일리 DB

     

    ◇ 문형표 장관 職을 걸고 재추진해야...

     

    정부는 2011년 기준을 올해로 바꿔 좀 더 세밀히 시뮬레이션을 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자는 입장이다.추가 논의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해 우선 저소득 지역가입자 500만명의 건보료를 절감시켜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앞선 1년6개월간의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고 지난해 9월 개혁단의 중간 발표를 통해 여론의 공감대도 형성됐던 만큼 군색한 핑계에 불과하다. 일부의 반발을 의식해 한 해 5700만건에 달하는 건강보험 민원을 더 끌고 가겠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고소득층의 건보료 무임승차를 그대로 놔두겠다는 것은 형평성 시비가 계속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론 건보 재정마저 위협받게 된다. 사실상 해체수준인 개혁단이 추가 논의에 나선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정무적 판단에 따른 논의 중단이라면 다시 정무적으로 판단해 기획단의 개편 원안을 다시 추진해 달라는게 기획단원들의 마지막 고언이다.

     

    뒤늦게 호들갑을 떠는 여당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개편안에 대한 당정협의에서 여당은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이고 일부 직장인들의 불만도 희석시켜달라는 하나마나한 요구를 내놓았다.

     

    도무지 비판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보건복지부는 3일 또다시 태도를 바꿔 연내 추진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정부가 건강보험 수가체계 개선안을 마련하면 당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천명한 만큼 이른 시일 안에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정부안을 만들어 당정협의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 28일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논의중단을 선언한 이후 6일 만에 재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많다. 그래서 차제에 소신없는 말 바꾸기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번에는 직을 걸고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