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영국 현지 5차 투표서 26표 획득…2016년부터 4년 임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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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택(59)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세계 해양 대통령'이라 불리는 국제해사기구(IMO)의 제9대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다. 2011년 채이식 고려대학교 교수에 이어 두 번째 도전 만에 이룬 쾌거다.
우리나라는 선거 막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바다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불리는 IMO 사무총장까지 한국에 내줄 수 없다는 견제 심리가 작용할 것으로 우려됐음에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며 외교력을 과시했다.
◇5차 투표서 26표 획득…한국인 최초 IMO 사무총장 배출 쾌거
30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임 사장은 이날 IMO 본부가 있는 영국 런던 현지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5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26표를 얻어 당선됐다. 2위 덴마크 후보와는 12표 차이를 보였다.
IMO 사무총장 선거는 40개 이사국의 비밀투표로 이뤄진다.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최저 득표자가 탈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선거에는 임 사장을 비롯해 안드레아스 노르세트 덴마크 해사안전청장, 안드레아스 크리소스토무 키프로스 해사국 부국장, 막시모 메지아 필리핀 해사산업청장, 비탈리 클류예프 러시아 교통부 해사운수정책국장, 주베날 시운두 케냐 정부 파견 IMO 사무국 직원 등 총 6명이 후보로 나서 경쟁을 벌였다.
이날 선거는 현지 시각으로 오전 9시30분부터 후보자 국가 대표가 3분, 후보자가 8분간 각각 연설한 뒤 오전 11시부터 투표에 들어갔다.
임 사장은 우리 시각으로 오후 8시가 지나 1차 투표를 무사히 통과하고 2차 투표에 진출해 당선의 기대감을 키웠다. 이후 5차 투표까지 접전을 벌인 끝에 12표 차로 당선을 확정했다. 참고로 지난 2011년에는 일본 후보가 2차 투표 만에 23표를 얻어 당선됐다.
임 사장은 이번 선거전에서 투표권을 가진 IMO 40개 이사국을 약 2개월간 쉴 새 없이 찾아다니며 새롭게 변모할 IMO에 대한 자신의 비전과 전략을 발표하고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사장은 당선 직후 "제가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됐다"며 "특히 정상회담을 통해 지지를 요청해준 박근혜 대통령과 유기준 해수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그리고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해군과 민간 후원회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고 당선의 변을 전했다.
임 사장은 2016년 1월1일부터 IMO 사무총장직을 수행한다. 임기는 4년으로 1회 연임할 수 있다.
◇IMO 연락관 등 개인 경험·역량 충분…유기준 장관 현지 유세 등 정부 외교적 지원도
선거운동 초기에는 14개 이사국이 포진한 유럽연합(EU)의 지지를 받는 덴마크 후보가 강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임 사장은 애초에는 런던 현지 언론의 전망에서 유력 후보군에도 들지 못했다. 유럽세를 등에 업은 덴마크 후보와 IMO 활동 경력이 풍부한 사이프러스 후보의 양강 구도가 점쳐졌다.
영국 후보가 당선된 제4대 사무총장 이후 유럽과 아시아, 북중미 등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사무총장을 맡아온 관례에 비춰볼 때 현재 총장이 일본인이라는 것도 임 사장에게 불리한 점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지난 24일 세계 최대 해운국으로 꼽히는 파나마 정부가 임 사장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를 선언하는 등 막판 상승세를 타며 기대감이 커졌다.
유기준 해수부 장관 등이 현지에서 막판 지지활동을 벌인 것도 적지 않은 힘이 됐다는 평가다.
IMO 사무총장 선거는 후보자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후보자 국가의 영향력(외교력)과 지역 안배 등이 당락의 향배를 가르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국가의 외교 노력이 당락을 좌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본, 스페인 등 6개국에서 후보를 냈던 지난 2011년에는 세키미즈 코지 씨가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선출됐다. 당시 일본은 차관을 보내 이사국 대표들과 접촉했다. 또 선거를 앞두고 해적퇴치기금이라는 명목으로 2년간 IMO에 1400만 달러의 기금을 내놓으며 물량공세를 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채 교수가 1차 투표에서 단 2표를 얻는 데 그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당시 우리나라는 선거 지원을 위해 담당 실장급을 파견했고 정부 차원의 특별한 지원금도 없었다. 사실상 채 교수가 '나 홀로' 득표전을 벌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는 해수부 장관이 직접 나서 현지에서 지지활동을 펼쳤다. 더욱이 유 장관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17대 국회의원 배지를 단 뒤 내리 3선에 성공할 만큼 선거의 달인으로 통한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수부는 물론 외교부에서도 장·차관이 각료급 회담 등을 계기로 이사국에 지지를 요청해왔다"며 "특히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의 남미 순방 때 브라질, 칠레, 페루 등 투표권을 가진 IMO 이사국과 정상회담을 통해 임 사장의 지지를 요청한 것이 역전 드라마의 서곡이 됐다"고 밝혔다.
국제적인 여건도 나쁘지 않았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외교력의 현주소를 직시할 때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이 후보를 내지 않았고 유력 경쟁 상대였던 덴마크 후보가 영국이나 독일처럼 소위 EU 내 주요 국가가 아니어서 붙어볼 만하다는 견해가 많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이 한국인 IMO 사무총장을 배출할 절호의 기회라는 분석이 나왔다. 임 사장이 1차 투표에서 선전하면 한국인 최초의 IMO 사무총장 탄생이 무난할 거라는 견해도 제기됐었다.
IMO는 해운·조선산업과 관련한 안전, 환경, 해상교통, 보상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다. 6월 현재 171개 정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IMO는 해운·조선 관련 국제규범을 만든다. 국가별 관련 산업과 기업의 경영환경에 큰 영향을 끼쳐 세계 각국은 해운·조선 관련 규범이나 의제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IMO 진출에 힘쓰고 있다.
IMO 사무총장은 의제나 안건 상정 권한을 가진다. '세계 해양 대통령' '바다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불린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1981년부터 2013년까지 IMO 국제규범이 우리나라 연관산업에 미친 경제적 영향은 153조원쯤으로 추산된다"며 "2016년부터는 모든 회원국이 IMO 안전·환경 관련 국제규범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IMO로부터 감사를 받아야 하므로 영향력은 더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임 사장은 1985년 해운항만청 선박사무관을 시작으로 해수부 해사안전국장을 2차례 지냈고 과거 주영 IMO 연락관, 외교관단 의장, 협약준수전문위원회 의장 등을 지낸 경력이 있어 IMO 관련 업무에 빠삭하다는 평가다. 주영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을 지낸 적도 있어 이번 선거에서 영국 내 주요 외교 관계자와의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도 당선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IMO 사무총장은 이사국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연임하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현 사무총장이 연임을 포기하면서 선거전이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