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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투자 실패를 경영자에게 책임지우는 배임죄의 규정을 명확하게 해야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힘을 얻고 있다. 형법은 고의범을 처벌하기 위한 규정인데 현행 배임죄에는 고의성 여부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경영상 과실인 경우도 처벌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지금껏 배임죄가 뚜렷한 가이드라인 없이 폭넓게 적용됐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회 부의장인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18일 국회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와 공동으로 '오락가락 배임죄 적용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현행 배임죄를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뜻을 지닌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에 빗대었다.
정 부의장은 "배임죄는 애매모호한 규정 때문에 사회 분위기와 여론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배임죄의 고의성 등 기준을 명확히 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이라 밝혔다.
정 부의장은 "세계 최초로 배임죄 조항을 만든 독일도 배임죄로 처벌한 사례가 드물고 2005년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한 이후 더욱 없다"면서 "오늘날 형사법에 배임죄를 둔 나라는 독일과 일본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본의 경우, 배임죄에 손해를 가할 목적이라는 표현을 명문화해 목적범만 처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일부개정법률안은 업무상 배임죄를 명확하게 목적범 및 침해범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경영활동까지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형사적 개입으로 기업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임죄는 본질인 배신을 판단하는 유일한 지표인 임무위배는 매우 개방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미필적 고의와 과실의 경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일반법인 형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개정이 쉽지 않다"면서도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개정하거나 상법에 경영판단원칙을 명문화해서 기업인의 경영판단에 따른 과실에 대해서는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것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동욱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배임죄의 본질은 신임관계의 위반도 중요하지만 배임죄가 재산죄이므로 재산상 손실여부를 중점적인 요소로 배임죄의 범죄성립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로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행 배임죄가 고의성 여부에 대한 규정이 없어 경영상 과실에도 처벌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기업인들이 중요 투자를 결정할 때 처벌을 고려하게 돼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수 없다는 주장이다.
재계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포함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배임죄로 잇따라 유죄를 받았지만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특히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배임죄 합헌결정을 내리자'경영판단의 원칙'을 상법에 명문화할 것을 법무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우선 상법개정에 앞서 형법부터 손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상법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이 이미 법원의 잇딴 판례로 축적됐다고 본 것이다. 반면 형법은 특정범죄가중처벌과 관련이 깊어 상법상 책임과 가중 처벌되는 일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국회내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상법개정안은 지금껏 법안심사소위에서조차 제대로된 논의를 거친 적이 없었다. 정치권이 배임죄에 대해 무심했던 점도 있지만 자칫 친(親)기업법 논란이일 수 있어 적잖은 부담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