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연합뉴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연합뉴스

    “이번 정권은 유난히 금융권을 못 흔들어 안달이 난 것 같아요. 도대체 우리에게 왜 그러는 걸까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 이후, 한 은행원이 제게 내뱉은 하소연입니다.

    최 부총리는 “우리나라 은행들은 너무 일찍 문을 닫는다. 오후 4시에 문을 닫는 금융사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금융 경쟁력이 우간다보다 떨어지는 것 아닌가”라는 발언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지난 11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직후 한 번, 15일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 출석해 또 한 번 했지요.

    최 부총리의 이 같은 반응에 금융권이 보인 반응은 실로 다양합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최 부총리의 발언을 변형시간근로제를 도입, 확대하자는 얘기로 이해하고 있다. 모든 은행 영업점이 오후 4시에 일괄적으로 문을 닫으면 고객이 불편하지 않겠느냐. 지금도 일부 특정 지점은 변형시간근로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러면서 “논란이 될 게 없다. 전혀 문제없는 발언”이라며 최 부총리를 두둔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윗분’들 눈치도 봐야하고, 부하직원들의 마음도 포용해야 하고, 기자들 앞에서 말조심도 해야 하는 고충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일선 은행원들의 목소리도 들어봤습니다. 이들은 “셔터가 내려가면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영업점 셔터를 내린 후 이들이 하는 일을 간단히 소개하면, 제일 먼저 시재 점검을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전산 상에 ‘통장 10개가 발행됐다’고 적혀있으면, 정말 10개가 맞는지, 전산 상의 입출금 액수와 실제 액수가 맞는지 등을 대조한다는 거죠.

    시재 점검이 끝나면, 각 담당 분야별로 일이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연말이 다돼가면서 소득공제에 관심 많은 고객들의 상품 가입 문의가 늘어나기에 영업부서는 잔업하느라 바쁘고, 기업대출이나 외환 부서는 기업의 업무시간에 맞추느라 오후 5~6시는 돼야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는 겁니다. 빨리 퇴근해 봐야 8시, 늦으면 11시가 다 돼서야 퇴근하는 경우도 많다고 입을 모읍니다.

    일이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건 아닐 겁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툭툭 내뱉는 한마디 때문에 현장 종사자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게 문제겠지요.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모든 금융사가 오후 4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국민은행은 ‘애프터뱅크’라는 이름의 영업점 총 5곳을 하나은행은 외국인들이 많은 지점을 중심으로 17곳을 오후 4시 이후에도 영업하고 있으니까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공항출장소 등을 탄력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2금융권의 경우도 웰컴저축은행은 모든 영업점을 오후 6시까지 열어놓고 있지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뱉는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금융개혁의 시급성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때 ‘구제도의 타파’를 강조했었지요. 여기서 언급한 ‘구제도’란 ‘관치금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입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역시 여러 차례에 걸쳐 금융규제 타파를 부르짖고, 또 이를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금융규제 완화를 절대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는 발언으로 ‘절절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요.

    대통령과 금융위원장이 이렇게까지 나서는데도, ‘관치금융’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려면 아직 멀었나 봅니다. 경제부총리의 한마디에 금융권이 흔들리는 것이야말로 그 증거가 아닐까요. 관치금융의 슬픈 자화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