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사랑’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 / 오페라평론가 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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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8일 개막돼 대구 오페라하우스를 뜨겁게 달궈온 ‘2015 대구 국제오페라 축제’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2003년 오페라하우스 건립과 함께 시작된 이 축제는 올해로 13주년을 맞았다. 대구 국제오페라축제는 서울 등 여타 오페라축제와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국제오페라 축제’라는 특징을 유지해왔는데, 이 명칭에 걸맞게 해외 오페라극장을 초청해 매년 가을 세계 유수의 오페라 무대를 대구에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2010년부터 대구 국제오페라 축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왔다. 그동안 대구 국제오페라 축제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한결 같았던 것은 매번 축제의 알찬 구성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매년 실시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고지원사업 평가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며 클래식 음악축제 기획의 모범사례로 꼽혀왔다.

     

    이번 축제 역시 활기 있고 역동적인 분위기에 관객들의 참여와 관심은 뜨거웠고 공연 레퍼토리도 다양해 점점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의 주제는 ‘치명적 사랑’이었다. 운명을 뒤흔들어 버린 사랑을 테마로 공연된 개막작 ‘아이다’와 창작오페라 ‘가락국기 (원제; 독도 인 더 헤이그)’는 대구 오페라하우스 자체 제작 작품이었다. 해외 초청오페라로 독일 비스바덴 극장이 ‘로엔그린’을 갖고 방문했다. 또 지역오페라단인 영남오페라단의 ‘리골레토’, 국립오페라단의 ‘진주조개 잡이’도 함께 공연됐다.

     

    개막오페라인 베르디의 ‘아이다’는 출연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의 기량도 나쁘지 않았지만 화려한 무대와 의상이 압도적이었다. 검정과 황금색이 주조를 이루는 무대와 의상은 조화로운 세련미가 넘쳤고 조명은 자연스러웠다. 관객들이 이 작품에서 우선적으로 기대하는 볼거리를 만족시킨 것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이 무대에 올랐지만 적절한 배치로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두 번째 작품인 바그너의 ‘로엔그린’은 우리나라에 좀처럼 볼 수 없는 대작이다. 독일 비스바덴극장의 이번 프로덕션은 현재 비스바덴극장의 음악감독인 지휘자, 주역가수들, 무대장치와 소품까지 함께 왔다. 대구 국제오페라축제는 지난해에도 이탈리아 살레르노 베르디극장의 ‘라 트라비아타’와 독일 칼스루에 국립극장의 ‘마술피리’를 성공적으로 공연한 바 있어 더욱 기대감을 갖게 했다.


  • 작품 초반에는 생각보다 단순한 무대와 부실한 합창파트 때문에 몰입이 어려웠지만 뒤로 갈수록 가수들의 음색은 선명해졌고 간결하고 상징적인 동작으로 이뤄진 연출의 의도를 잘 표현해 낭만적인 음악과 초현실주의 그림 같은 무대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오케스트라의 선전이다. 대구 국제오페라 축제에 함께 하는 오케스트라는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인으로 구성된 비상근 오케스트라지만 축제기간에는 온전히 축제 작품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다’는 물론이고 ‘로엔그린’처럼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중요시 되는 작품을 맞아 나름대로 작품의 흐름에 부합되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각 작품의 지휘를 맡은 지휘자의 역량도 한몫 했을 것이나 오케스트라가 매 작품 최선을 다해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모습은 ‘리골레토’에서도 이어졌다. 오페라 축제를 운영하는 효율과 음악적 완성도를 생각할 때 공통된 전문 오케스트라를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택해야 할 방식이지만 서울의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 등 다른 오페라축제에서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미처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 영남오페라단의 베르디 작곡의 ‘리골레토’는 정상급 바리톤 고성현이 리골레토 역으로 출연해 명불허전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영남오페라단은 대구 지역의 오페라 역사를 이끌어 온 전통과 저력 때문인지 매번 서울의 유수 민간오페라단에 뒤지지 않는 무대를 선보여 왔고 이번에도 이탈리아 주역 성악가와 지휘자를 초빙하고 지역의 성악가를 적절히 안배해 지역 오페라단으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다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한 비제의 ‘진주조개 잡이’는 대구 공연 2주전에 서울에서 막을 올려 호평을 받은 무대였다. 국립오페라단이 시즌 공연을 가지고 이 시기에 대구를 찾는 것은 지역 간 교류이기도 하지만 쉽게 서울 오페라 무대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관객들을 위한 문화 복지의 차원으로 봐야한다.

     

    대구 오페라하우스의 작품이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지는 않았으니 진정한 상호교류는 아니다.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제작한 오페라가 해외에는 가면서 어째서 서울에서는 공연되지 못하는가? 문화의 균형적 발전이란 타 지역에 서울의 문화만을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박명기 대구 오페라하우스 예술총감독(사진)은 “오페라를 공연한다는 것은 고도의 창조적인 예술을 생산하는 행위로 일회용 소비성 행사와 비교하기 어렵다. 오페라가 남긴 예술성은 100% 지역민들에게 돌아간다. 이처럼 상업성을 발휘할 수는 없으나 가치를 지닌 문화예술에는 정부나 지자체 등 상급기관에서 집중적으로 투자해야만 후대에 전할 수 있는 고급예술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 그는 “이번 ‘로엔그린’ 공연도 사실 큰 모험이었지만 도전을 해야만 결실도 있다는 생각으로 노력했다. 다만 전속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 등 오페라하우스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여건이 아직 구비가 안 돼 그런 점에서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런 오페라하우스를 갖고 있다는 것은 대구가 문화예술도시로 성장해 나가는 엄청난 자산이다. 이 파워를 제대로 활용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고 부연했다.

     

    축제 기간 중 ‘아이다’, ‘로엔그린’, ‘리골레토’를 감상하기 위해 차례로 방문하면서 필자가 가장 많이 본 풍경은 축제가 열리는 극장 안팎에서 느껴지는 떠들썩함과 설렘, 흥분 같은 것이었다.

     

    자원 활동제도를 활용한 대구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객들의 질서정연한 감상태도를 보며 이들이 이미 오페라 축제를 온몸으로 즐길 줄 아는 수준에 다다랐다고 느꼈다. 지난해에는 메인공연 객석점유율 94%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13년간 84%의 평균 좌석점유율이라는 놀라운 숫자는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 했다.

     

    이번 주 금요일(6일) 창작오페라 ‘가락국기’가, 토요일(7일)에는 ‘가락국기’와 폐막콘서트가 잇달아 공연되며 한 달여의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내년 테마도 벌써 정해졌다고 한다. 1년 후 가을, 다시 맛보게 될 오페라의 향연이 기다려진다.  /손수연 오페라평론가 (yonu44@naver.com)

     

    [필자 약력] 숙명여대 성악과 졸업, 건국대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제3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삼익악기상 수상, 수백회 오페라 및 클래식콘서트 해설, 음악저널 편집위원, NH아트홀 손수연의 예술학교 등 오페라 인문학 강좌, 한양여대, 서울시립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