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월 부과계획 물건너가, 연내처리 불가-내년처리도 불투명
  • ▲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또 해를 넘기게 됐다ⓒ뉴데일리 DB
    ▲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또 해를 넘기게 됐다ⓒ뉴데일리 DB

     

    우리나라 건강보험 적용인구는 5000만명 쯤 된다. 이 중 직장 가입자는 대략 1500만명이고 여기에 딸린 피부양자가 2000만명이 넘는다.

    임금 외 수천만원씩의 고소득을 올리는 직장인이 수십만명이고 집부자, 땅부자인 피부양인 역시 수십만명이 넘지만 느슨한 피부양 조건 탓에 좀체 그 수는 줄지 않고 있다.

    이자 소득이 4000만원을 넘지 않거나 기타 소득과 연금 역시 각각 4000만원 이하면 따로 건보료를 내지 않는 '부양요건'과 '소득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최대 1억2000만원의 수입이 있어도 피부양자가 된다는 얘기다.

    실제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중 주택 보유자가 400만명에 달하고 2채 이상 가진 사람만도 137만명이 넘는다. 5채 이상을 갖고 있는 집 부자도 16만명을 웃돈다.

  • ▲ 불공정한 건보료 체계 개편 요구가 많지만 수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 불공정한 건보료 체계 개편 요구가 많지만 수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논란이 끊이질 않자 정부는 지난해 본격적인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에 나서 우선 연간 종합소득 2000만원 이상을 버는 이른바 부자 피부양자 19만여명에게 건보료를 부과하겠다는 초안을 밝혀 호응을 얻었다.

    학계, 노동계 등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이 1년 6개월간 고뇌를 거듭한 성과였다. 당시 기획단은 소득 중심으로 건보료를 부과해 소득은 없고 전월셋집이나 자동차만 있는 지역가입자는 건보료를 낮추고, 소득이 많은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의 건보료를 올리는 안을 내놓을 예정이었다.

    임금외 소득이 3000만원이 넘는 고소득 직장인 26만명에 대해서도 1000만원 초과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보험료를 물리겠다는 내용도 포함됐었다.

    하지만 올 초 연말정산 파동이 일면서 개편안은 발표 하루를 앞두고 돌연 취소됐다.

    당시 문형표 복지부장관은 "올해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백지화 방침을 밝혔다. 말 뒤집기에 대한 반발이 일자 당정은 2월 협의체를 다시 꾸려 재논의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때마침 메르스 파동이 겹치면서 상반기를 그냥 보냈고 7월에야 종전 기획단 안과 유사한 초안을 확정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최종안을 만들어 공청회와 지역설명회 등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고 건강보험법을 개정해 이르면 내년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이후 '감감 무소식'이다. 뒤늦게 연말 처리를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슬그머니 사라질 판이다.

     

  • ▲ 당정은 협의체를 꾸려 지난 7월 잠정안까지 마련해 놓고도 추후 일정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 당정은 협의체를 꾸려 지난 7월 잠정안까지 마련해 놓고도 추후 일정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정진엽 장관과 방문규 차관은 최근 잇따라 연내 개편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 장관은 지난 9일 "연내 개편을 목표로 한 건 전임 장관 얘기"라며 "지금은 책임을 완전히 내가 져야 하는 상황이고, 일정이 많이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방 차관 역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은 정확한 시기를 말하기 어렵다"면서 "중요한 문제인 만큼 실수가 없어야 하고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고 답을 피했다.

    이대로라면 연내는 물론 총선이 예정된 내년 통과도 기약하기 어려운 형편으로 박근혜정부의 대표적 민생 공약 중 하나가 그대로 사장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는 복지부로부터 개편 방향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재산이나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에 대해선 부과기준을 강화해 보험료를 더 내게 하는 방식 △생계형 자동차와 평가소득은 부과 기준에서 폐지하되, 저소득층 가입자의 보험료가 오르지 않는 방향으로 최저보험료를 도입하는 방안 등이다.

    현행 부과체계가 지역·직장 가입자 모두 상위 고소득층은 보험료를 덜 내고, 저소득층은 지나치게 더 내는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 데 방점이 찍혀있었고 여야 모두 고개를 끄덕여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지역가입자의 부담을 줄이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근로소득자는 보수 외 소득이 있을 경우 세부담이 크게 늘고 자산이 있는 피부양자의 부담도 늘어 불만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부유층, 직장인, 중산층 모두의 표를 잃는 일이다 보니 여야 모두 내켜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15일 국무회의를 열고 내년 건강보험료를 0.9% 올리기로 했다. 2009년을 제외하면 역대 최소 폭의 인상이었지만 민심은 싸늘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과 관련한 일정 제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연내 발표는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올해 안에 발표하겠다는 부과체계 개선안이 지금도 감감무소식인 것은 결국 시간을 벌기 위한 기만적 술수였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건보료 개편안이 언제 다시 정부 캐비닛에서 꺼내질 지 기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