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분간 동의와 재청만 가득소액주주 주총 참여 불허에 항의 소동도

  • "동의합니다. 제청합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에 있는 A건설사 47회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들이 이른 아침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내뱉은 말이다.

    이날 주총장은 시작 1시간 전부터 만석이 됐다. 이는 주주들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총장의 모습은 기대와는 반대였다. 주총장에서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자사 직원이었다. 기자실을 2년 이상 출입하며 만난 낯익은 직원들이 몇몇 있었다. 사원증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주총 시작을 기다리는 직원들도 있었다. A건설 관계자는 "주주인 직원들이 참석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분명 자사주를 보유한 직원의 주총 참석에 이의를 제기할 명분은 없다.

    그러나 주주들의 모습은 이른 아침 주총장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의장이 안건을 발표하는 중에도 어떠한 관심이 없었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이름 아침 출근이 힘들었는지 졸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심지어 옆 사람과 사원증을 꺼내고 잡담을 했다.

    의장이 말을 이어가는 도중 "의장"을 외치며 발언권을 요구한 주주들은 예상대로 대본이 적힌 종이를 꺼내 읽었다.

    자리에 아무런 감흥 없이 앉아 있던 주주들은 "동의합니다. 제청합니다"를 힘없이 외쳤다. 그들은 두 개의 멘트를 내뱉을 시기만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의장도 예고된 멘트를 기다린 듯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이날 주총은 20여분 만에 아무런 소란 없이 마무리됐다. 

    주총이 끝나고 주주들은 "이제 (사무실로) 들어가자"는 말과 함께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손에는 A건설사 사원증이 있었다. 결국 자사 직원 상당수가 주총장에 참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총장에 자사 직원이나 외부 인력을 동원해 의장의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막는다"며 "모든 주총장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으로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

    주총에 관심 없는 A건설사 직원들은 왜 지루하게 현장을 지키고 있었을까. 이들 때문에 주총 참여를 원하는 실제 주주들이 피해가 예상됐다. 실제 주총 시작 전 1층 로비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한 주주가 주총장이 만석이라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하자 거세게 항의한 것이다. 결국 보안요원은 주주의 입장을 허가했다.

    앞서 A건설은 소액주주에게 주총 2주 전 통보하는 주주총회 소집통지서를 보내지 않았다. 이는 상법 제542조의4에 따라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지난해 소액주주에게도 주주총회 소집통지서를 일괄적으로 보냈다. 결국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막기 위한 행동으로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날 사장의 재선임 건이 제2호 의안으로 상정됐다. 물론 A건설사 사장이 연임에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주총 진행과정에서 일부 주주들의 반대가 나올까 A건설은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블랙리스트 주주의 참여를 막기 위해 용역이나 직원들로 주총장을 채운다"며 "소위 주총꾼으로 불리는 주주가 입장하면 주변에 용역들을 앉게 해 행동을 감시한다"고 말했다.

    이날 주주로서 발언권을 행사한 사람은 4명이었다. 이들 모두 안건에 동의하니 서둘러 주총을 진행하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혹시나 이들 이름을 메모해 A건설사 측에 직원여부 확인을 요청하니 거부했다. 이유는 뭘까. 그 답은 A건설사 임직원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주총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은 과거부터 있었다. 기자들도 익숙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실제 주총 진행 상황을 눈으로 확인해 보니 대기업의 모습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주주총회는 1년에 한 번 경영진과 주주가 만나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주주는 경영진에게 지난해 실적과 올해의 전략을 묻는 의미있는 시간이다. A건설사는 단순히 어두운 면을 숨기는 것에 급급하기보다는 반성과 개진에 시간을 써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주총을 진행해야 주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