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학적 주장으로 돼지 A형 백신 제외… 국내 발생 없다 보장 못 해접종 횟수도 2→1회 줄여… 가축전염병 고착화 우려
  • ▲ 가축방역심의위원회.ⓒ연합뉴스
    ▲ 가축방역심의위원회.ⓒ연합뉴스

    가축 방역 관련 심의·의결기구인 가축방역심의위원회(이하 방역위)가 생산자단체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제역 백신 접종과 관련해 횟수는 물론 유형 선택까지 입김이 작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충북 보은군 탄부면의 한우 농가에서 의심 신고가 접수된 구제역이 지난 5일 보은지역 젖소 농가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혈청형 'O형' 바이러스로 확진됐다.

    이로써 구제역 발생은 경기·충북·전북 등 3개 지역 4개 농가로 늘었다.

    방역 당국은 상당수 소 농가에서 백신 접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오는 12일까지 전국의 소 330만 마리 중 최근 접종한 소 등을 뺀 283만 마리를 대상으로 일제접종에 나선 상태다.

    방역 당국은 경기 연천군 젖소농장에서 발생한 'A형'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확인되지 않았고, 'O+A형' 혼합백신의 재고 물량도 부족해 O형 백신을 먼저 접종하기로 했다. O형 백신은 돼지에 맞힐 것을 가져와 쓰기로 했다.

    방역 당국은 주로 나타나는 유형에 따라 소는 O+A형 백신, 돼지는 O형 단가백신을 맞혀왔다.

    문제는 A형 구제역 바이러스가 돼지에 안 걸린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아직 돼지가 A형에 걸린 사례가 없지만, 돼지가 A형에 안 걸린다는 것은 아니다"며 "어떤 유형의 바이러스가 발생할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A형 구제역은 지난 2010년 1월 경기 연천·포천지역 소 농가에서 총 6건 발생했다.

    돼지가 A형 구제역에 걸릴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데도 방역 당국이 돼지에는 O형 백신만을 맞힌 배경에는 방역위 내 생산자 단체의 입김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구제역 백신은 수입해서 쓴다. 주문자 생산방식이어서 단가백신을 쓸지, 혼합백신은 어떤 유형을 섞을지를 주문자가 결정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구제역백신연구센터 설명으로는 국내에선 'O+A+Asia1형' 3가 혼합백신을 주로 써왔다. 위험도 분석을 통해 이들 세 가지 유형의 국내 발생위험이 크다고 본 것이다. 지금처럼 소는 O+A형, 돼지는 O형 백신으로 조정된 것은 2014년 이후다.

    백신센터 관계자는 "백신 유형은 방역위에서 생산자단체 의견을 수렴해 결정한 사항"이라며 "축산 농가에서는 혼합백신이 아무래도 단가백신보다 비싸고 바이러스 함량이 높아지면 그만큼 부작용이 많아질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류 교수는 "혼합백신을 쓰면 (그동안 많이 발생했던) O형 바이러스의 예방 효과가 떨어질 순 있다. 부작용과는 다른 문제"라면서 "오일 형태의 구제역 백신은 그동안 광물성 기름을 주로 썼다. 일부 부작용이 있어도 효과가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봉균 검역본부장은 지난 8일 구제역 관련 브리핑에서 "백신 오일에는 식물성도 있다. 식물성기름은 몸에 흡수돼 없어진다"며 "접종 후 스트레스로 주저앉는 등 이상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스트레스 완화제를 놓기도 한다. 몇천 원짜리 백신을 맞힐지, 운에 맡겼다가 도살 처분돼 수억 원의 손해를 볼 위험을 감수할지 따져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 ▲ 돼지 구제역 접종.ⓒ연합뉴스
    ▲ 돼지 구제역 접종.ⓒ연합뉴스

    방역위에서 생산자단체의 입김은 이뿐만이 아니다.

    검역본부는 돼지의 경우 백신을 2회 맞힐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방역위에서 생산자단체 의견이 받아들여지면서 농식품부는 돼지 1마리당 1회 접종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돼지는 보통 생후 6~7개월이면 시장 출하를 위해 도축한다. 어미돼지가 백신을 맞으면 새끼돼지에 모체이행항체가 생기므로 돼지는 그 효력이 떨어지는 생후 8주쯤 백신을 1회 접종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비육돈은 출하 시기에 백신 효력이 떨어져 구제역에 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검역본부는 비육돈이 출하되기 전 추가 접종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돼지의 경우) 구제역 백신 접종 횟수가 2회였다"고 전했다.

    방역위에서 접종횟수를 2회에서 1회로 축소한 것은 2011~2012년 무렵이다. 검역본부 설명으로는 당시 찬반 의견이 갈렸지만, 양돈협회에서 출하 시기에 추가 접종하면 돼지 생육이 저하돼 상품성이 떨어진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제역 전문가는 "방역위에서 생산자단체의 힘이 세다 보니 일(방역)을 제대로 못 한다"며 "구제역이 생기지 않으면 상관없겠지만, 가축 전염병이 연례행사처럼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방역행정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