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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들의 병상 증설과 새 병원 건립을 통한 규모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국내 대학병원의 전체 병상 수는 무려 3만병상이 늘었고, 향후 5년간 1만병상 가까이 증설될 전망이다.
이미 국내 의료기관 병상 수는 OECD 가입국 평균 병상 수의 두 배를 넘어선 지 오래. 기형적인 병상 확대 경쟁 속에 대학병원들은 생존 혹은 공멸 기로에 섰다.
◆10년 새 대학병원 85곳에서 131곳, 3만병상 늘었다, 최대 8천병상 추가 예정…왜?
<뉴데일리경제>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입수·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규모 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지난 10년새 3만병상 넘게 늘었다. 2007년 12만5156병상에서 2017년 15만304병상으로 집계됐다. -
그중에서도 대학병원 개체 수와 이들 병상 수가 특히 많이 늘어나면서 대학병원의 몸집 불리기와 새 병원 건립 경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7년 85개대학병원 5만7121병상이었던 것이 10년새 131곳, 8만5673병상으로 늘었다.
몸집 키우기에 나서는 경향은 사립대병원과 국립대병원 너나할 것 없다. 사립대병원들은 새병원 개원 외 기존 병상 수를 늘려왔다.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빅5 병원들은 적게는 400병상에서 많게는 700병상까지 증설하며 규모를 키웠다.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제2병원 건립 움직임이 활발했다. 양산부산대병원, 창원경상대병원, 화순전남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들은 최근 10년새 잇따라 분원 문을 열었다.
이같은 기조는 향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각 대학병원들이 앞다투어 밝힌 신·증축 계획을 종합해보면 오는 2019년 이후 암병원 등 시설 증축과 새병원 개원을 통해 늘어날 예정인 대학병원 병상 수는 최대 7739병상에 달한다.
특히 서울·경기 수도권 지역과 충청 지역의 병상 수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신설 계획 예정인 대학병원은 용인시 동백세브란스병원, 의정부 을지대병원, 광명 중앙대병원, 이대서울병원, 은평성모병원, 세종충남대병원, 충주충북대병원, 군산전북대병원 등이다.
동대문에서 원지동으로 이전하는 국립중앙의료원과 최근 신축 계획을 밝힌 부영건설의 새병원까지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최대 8800병상이 늘어날 예정이다. -
대학병원들이 몸집 확대에 나선 이유는 수익 창출을 위해서다. 민간보험 가입 외에도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 기조, 고령화 인구구조 가속화 등에 따라 늘어나는 환자 수요를 끌어들이려는 것.
실제 환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종합병원급 이상 입원 환자는 지속적으로 늘었는데, 지난 2008년 11만4647명에서 2015년 14만1920명으로 23%가량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 윤 교수는 "수도권 대학병원은 새롭게 형성된 신도시를 중심으로 돌파구를 찾고, 지방 대학병원은 교통발달 등에 따라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지역환자들을 흡수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존 키워드 '차별화'…넘쳐나는 병상에 자칫 '공멸' 우려
대다수 대학병원들이 생존을 목적으로 시도하는 이같은 규모 경쟁은 실제 '생존'으로 이어질까. 서울아산병원, 연세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환자들이 알아서 찾아가는 빅5 대학병원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낙관적이다.
연세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전·현 정권 정부 정책이 계속적으로 보장성을 강화하는 기조"라면서 "환자 선호도가 높은 빅5병원은 늘어나는 병상 수를 어떻게 채울지는 사실 고민의 지점이 아니다"고 말했다. -
문제는 그이하 순위 대학병원들이다. 중형급 대학병원들을 중심으로 병상 수 경쟁은 자칫 공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우리나라 인구 1천명당 공급병상수는 10.3병상으로 OECD(2014년도 기준) 국가 평균 4.8병상과 비교해 두 배 이상이다.
고대의료원 박종훈 의무기획처장은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병상수는 그자체로도 문제임은 물론이고, 과연 유지 가능하냐의 문제에도 직면한다"면서 "병원은 일반 산업과 달리 간호사 등 고정적인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비탄력적인 분야다. 경제적 여건이 양호할 때에는 어떻게든 병상은 차겠지만 조금이라도 경제상황이 나빠지면 결국 의료기관 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2009년도 당시 고대안암병원 적정병상 수는 1500병상으로 분석됐지만 지금 우리는 1200병상이하라고 보고 있다"면서 "그만큼 의료 환경이 가변적"이라고 덧붙였다.
환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 10년간 병상 규모를 두 배 가까이 확대해온 고대의료원은 이제는 규모의 경쟁이 아닌, 질적 경쟁에 집중하고 있다.
박종훈 의무기획처장은 "안암병원 최첨단의학센터 건립에 소요되는 비용이 수천억원에 달하지만 병상 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면서 "규모를 키워서 의료수익 성장세를 담보할 수 없다. 새로운 거주 지역 형성 등 틈이 보이니까 너도 나도 병상 수 경쟁을 하고 있지만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10년간 꾸준히 성장해온 건국대병원 역시 더 이상의 규모 경쟁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건국대병원은 그간 60병상을 늘렸다. 대신 스타 교수 영입과 각종 전문센터 중심의 집약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건국대병원 황대용 원장은 "우리 병원 역시 적정 병상 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규모의 싸움이 된 병원계 상황에서 보면 몸집을 늘리는 것이 맞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상급종합병원으로서 중증 환자 비율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과 이에 맞는 적정한 인력 배치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할 때 중형급 대학병원들에게는 자칫 무모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황 원장은 "의료기관들이 일종의 건강염려증을 유발함에 따라 환자 수요가 늘어난다는 미국 연구 분석도 있었다"면서 "신축과 증설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를 통한 성공은 특수한 경우에 국한되는데, 급변하는 의료 환경과 빅5병원이 의료수익을 휩쓰는 비균형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정책 전문가들은 의료 왜곡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수백에서 수천억원대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만큼 수익 창출을 위한 과잉 진료와 대형병원 주변 중소병원들의 경영난에 따른 의료왜곡 현상이다.
가천의대 예방관리학교실 임 준 교수는 "대형화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구축하려 하는 것은 시장중심의 국내 의료체계에서는 당연한 모습이지만 몸집 경쟁과 진료 의사 실적 압박 수위는 비례한다는 게 문제"라면서 "대형병원들이 생존을 위해 불필요한 입원을 증가시키고, 비급여 진료를 남발하는 과잉 진료, 고가 진료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진료는 결국 환자의 치료 리스크를 증가시키는데, 결국 의료 질이 떨어지는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의대 김 윤 교수는 "경쟁력이 있는 대학병원들은 환자 수요가 뒤따르겠지만 몸집만 커진 대학병원들은 큰 병원 본연의 역할인 중증질환 진료보다 경증 질환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김 교수는 "왜곡된 진료를 통해 대학병원은 어떤 방식으로든 생존을 이어간다 해도, 무엇보다 문제는 대학병원 인근 500병상 이하 중소병원들"이라면서 "환자를 빼앗긴 중소병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장기입원 등 왜곡된 진료 양태를 보이거나 도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