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도입 반대… 재무구조 악화에 중소업체 줄도산 우려까지"자금력 안 되는 업체 퇴출되고 대형사들만 시장에 남을 수도"
  • ▲ 자료사진. 최근 우방건설산업이 선보인 '안성공도 우방아이유쉘' 견본주택 내. ⓒ우방건설산업
    ▲ 자료사진. 최근 우방건설산업이 선보인 '안성공도 우방아이유쉘' 견본주택 내. ⓒ우방건설산업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후분양제'가 국감초반 핵심키워드로 떠올랐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상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잇달아 후분양제 도입을 위한 로드맵 마련에 착수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업계에서는 신규주택 공급물량 자체가 줄어드는 등 시장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견·중소 주택건설업체들의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와 LH는 공공주택에 후분양제를 도입하기 위한 로드맵 마련에 착수하기로 했다.

    지난 12일 국감에서 김현미 장관은 "공공부문부터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민간에서도 후분양제를 유도하는 내용의 '후분양제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13일 박상우 사장도 "실무 차원에서의 논의는 있었지만, 기관 대 기관의 공식적인 검토는 없었다"면서 "국감 이후 정부의 로드맵 마련에 착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2004년 2월 참여정부 시절 나왔다가 주택공급물량 축소와 주택건설업체들의 자금조달 곤란 등의 문제로 2008년 11월 사실상 무산된 후분양제 논의가 10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분양허용 공정률 수준을 2007년 40%에서 2011년 80%까지 끌어올린 후 도입 5년 내 후분양제 정착을 목표로 했다.

    현행법 체계에서는 시공사가 대지소유권 확보, 분양보증 등 일정조건을 충족하면 착공과 동시에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하는 선분양을 허용하고 있다. 시공사는 분양을 받은 입주자가 납부한 계약금(주택가격의 10%), 중도금(60%) 등 실제 분양가의 70%에 이르는 자금을 완공 전 미리 받아 공사비로 사용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후분양제는 주택건설 공정이 80%가량 진행됐을 때 입주자를 모집하는 제도로, 미국이나 유럽 등 대부분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선분양이나 후분양이 의무화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미분양 물량을 제외하면 선분양이 보편적인 분양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장단이 뚜렷한 만큼 찬반입장 역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후분양제 도입 찬성론자들은 부실시공을 예방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는 효과에 주목한다. 견본주택이 아닌 실제 아파트 단지의 층·향·구조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주택건설시장에서는 강력한 투기 차단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동안 선분양제에서는 실수요보다 투기 목적이 주를 이루는 분양권 전매기 이어지면서 부동산 과열 양상을 부추겨 왔다. 이에 반해 후분양제에서는 분양권 개념이 없어 투기수요 유입을 줄일 수 있고, 주택가격 변동성도 낮아진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팀장은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건설사의 부실시공 사태가 현저하게 줄고 아파트 가격 거품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구매할 주택의 건설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완공된 후 분양받을 수 있어 부실시공 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건설사들이 미분양을 피하기 위해 합리적인 분양가를 제시하게 되고, 건설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더라도 일반 구매자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민간건설사들은 후분양제 도입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규제책을 거듭 도입하고 있는 가운데 후분양제까지 시행할 경우 주택건설 경기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헌승 자유한국당 의원은 전체 주택공급 물량의 22%에 달하는 물량이 시장에서 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헌승 의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3년 평균 주택건설 실적 60만7000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연간 13만4800가구의 주택공급 감소가 예상된다. 후분양제 도입 이후 실적 100위 미만의 주택공급업체가 줄도산할 경우에는 주택공급량이 최대 76.3%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건설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으며 현금흐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선분양제에서는 수분양자들의 계약금과 중도금을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후분양제에서는 건설사들이 공사대금을 PF(프로젝트파이낸싱)로 마련하는 사례가 빈번해질 것"이라며 "PF 차입금이 늘어나면 건설사들이 우발채무 증가와 부채비율 상승이라는 자금 압박 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어 "결국 후분양제 도입 후 건설사들은 수익성 저하와 재무구조 악화라는 두 가지 고민거리를 동시에 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후분양제가 도입될 경우 중소 주택건설업체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재무구조가 좋지 않거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건설사는 자금력 있는 시행사의 단순 시공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견건설 A사 관계자는 "대형사는 사업 초반에 분양대금이 없어도 공사비 조달에 어려움이 없겠지만, 중견사는 막대한 공사비를 조달할 곳이 없어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중견사일수록 주택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워크아웃에 있거나 경영상황이 악화된 건설사들은 좋은 사업을 따내기 힘들어져 재무구조 개선이 더 힘들어지고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견건설 B사 관계자는 "선분양 수익금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자체자금으로만 투입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자금력이 부족한 중견사들은 주택사업이 힘들어져 시장에서 퇴출되고 대형사들만 주택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전문가들은 후분양제 도입에 공감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부동산 관련 제도 정비 및 금융상품 개발, 민간건서라 등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택협회 한 관계자는 "금융시스템 등 기반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후분양을 의무화할 경우 소비자 혼란과 건설사 부담으로 주택공급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후분양 확대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선분양과 후분양의 장단점을 철저히 분석해 건설사들이 후분양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부터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