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반발에 기숙사 건립, 제자리걸음민자기숙사 비는 한 해 등록금보다 비싸정책마저 현실과 맞지 않은 요건에 감소
  • ▲ 경희대 학생들이 2014년 10월 기숙사 신축 인·허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 경희대 기숙사는 지난달 가까스로 문을 열고 학생들을 받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 경희대 학생들이 2014년 10월 기숙사 신축 인·허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 경희대 기숙사는 지난달 가까스로 문을 열고 학생들을 받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청년 주거난이 심해지면서 정부와 학교가 기숙사를 짓겠다고 나섰지만 집값이나 임대료 하락을 우려한 주민 반대에 부딪혀 기숙사 건립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곳이 많다. 기숙사가 들어서더라도 민자 기숙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고가 기숙사비'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대학생 입장에서 기숙사는 '살고 싶어도 방이 없고, 살 수 있어도 비싸서 못 사는' 시설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청년 주거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효과마저 줄어들고 있어 주거 불안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대학생 기숙사 5만실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기숙사가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밀려 진척이 더디다.

    지난해 한양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11.5%로, 학생 10명 중 1명만 입실이 가능했다. 부족한 기숙사를 확충하기 위해 한양대는 2015년 학교 부지 내에 외국인 학생 전용 6기숙사(540명 수용)와 국내 학생 전용 7기숙사(1450명)를 직영으로 짓는 신축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이 사실상 표류된 상태다.

    기숙사의 경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로 분류된다. 도시계획시설을 지으려면 시의원과 공무원, 외부전문가가 포함된 시의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고 구에 건축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양대는 이를 위해 지난해 서울시 도계위에 심의를 신청했지만, 지난 6월 '심의 보류'가 결정됐다. 원룸을 운영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한양대기숙사건립반대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원룸 공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학교와 지자체에 민원을 넣고 반대해왔다. 시의 심의 보류가 결정된 후 한양대 총학생회는 기숙사 문제 해결을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등 항의하고 있어 주민과 학생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관계자는 "주민들은 투표권 소지자지만, 주소지를 등록하지 않은 학생들은 정치적 영향력이 없다"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주민들의 반발 여론에 더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려대도 4년 전 서울 성북구 개운산 내 학교 부지에 110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 신축 계획을 세웠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혀 공사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개운산 부지는 사유지이지만 기숙사를 짓기 위해서는 산지관리법 제15조에 따라 지자체장으로부터 전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고려대는 2014년 8월 근린공원으로 묶여 있던 해당 부지에 대한 토지용도 변경 신청을 성북구청에 냈다. 하지만 해당지역을 '게이트볼 연습장' 등으로 이용하는 주민들이 공원 내 산림 파괴를 우려해 민원을 제기하는 등 반대해왔다.

    3년째 답보상태인 기숙사 신축 계획에 속이 타는 건 학생들이다.

    고려대 총학생회 측은 "공원에 짓는 기숙사인 만큼 학교가 주민들의 체육시설을 보장하고 녹지를 복원하는 등의 방안도 내놨지만, 여전히 일부 주민들은 환경보존을 빙자한 원룸 공실 발생을 우려해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고 있다"며 "성북구청 역시 유권자인 주민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성북구 돈암동 일대에는 사학진흥재단이 '연합 행복기숙사'를 지으려고 지난 2월 건축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역 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기숙사가 단지 아래 초등학교 등굣길에 있어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지만, 속내는 집값과 임대료 하락 때문으로 보인다.

    돈암동 A공인 대표는 "일부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질까 봐 기숙사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숙사가 들어서면 주변 임대료에도 영향을 주게 되기 마련이다. 실제 기숙사가 지어진다는 얘기가 나온 뒤로 인근 원룸의 공실이 늘었다"고 말했다.

    기숙사가 지어져도 청년 주거난은 여전하다. 외부자본을 유치해 짓는 민자기숙사가 늘어나면서 원룸 월세보다 비싼 기숙사 비를 받는 곳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해 25개 사립대에서 민자기숙사 41동이 운영되고 있는 가운데 월 평균 기숙사비가 50만원 이상인 기숙사는 8곳, 40만원 이상인 곳은 16곳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서울 지역 주요 대학가 월세 평균은 49만원이었다.

    대학교육연구소 조사 결과 1인실 기준으로 연세대 SK 국제학사가 65만5000원으로 가장 비쌌고, 이어 고려대 프런티어관이 59만5000원, 건국대 민자 1·2기숙사는 58만5000원, 숭실대 레지던스홀 55만1000원 등이었다.

    연세대 기숙사 1인실을 1년간 이용하면 총 786만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는 사립대 연간 평균 등록금(737만원)보다 높다. 월 평균 민자기숙사 비가 29만~44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호화기숙사' 논란이 당연해 보인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부담하는 민자기숙사 비의 절반가량은 외부 차입금 상환으로 나간다"며 "대학교는 민자를 이용해 기숙사를 지을 수 있어 쌓아둔 건축 적립금을 쓰지 않아도 되고, 민자기숙사 운영회사는 공실 걱정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고, 건설자금을 대출해 준 금융회사들 역시 안정적인 채권을 얻을 수 있다. 비싼 기숙사 비를 내는 학생들의 희생을 바닥에 깔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숙사는 학생을 모집해 운영하는 대학이 갖춰야 하는 필수 시설로 봐야하지만, 대학의 보유조건에 관한 기준이 없어 방치돼왔다"며 "이대로 가면 대학생들의 주거부담이 커지고 가계에 그대로 전가되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청년임대주택 등의 효과마저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청년임대주택 당첨자 계약률은 2014년 77%에서 2015년 67%, 2016년 61%로 하락했다. 입주자로 선정된 대학생 당첨자의 계약률이 3년 평균 68%에 그친 셈이다. 1억원을 웃도는 원룸 시세에 비해 지원금 규모가 부족하고, 절차도 복잡해 집주인들이 임대를 꺼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세대, 서강대가 있는 서대문구 신촌 대학가 일대의 전용 16~23㎡ 원룸의 보증금은 9000만원선, 홍익대가 있는 서교동의 전용 23㎡ 원룸은 1억2000만원 수준이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 33㎡ 신축 원룸은 1억6000만원에 이른다.

    이에 반해 청년임대주택 지원한도액은 수도권의 경우 8000만원, 광역시가 6000만원이다. 지원금이 1억2000만원까지 가능하지만, 취업준비생은 공동거주 신청이 불가능하다. 지원대상에 선정되더라도 목돈이 없다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월세를 택할 수밖에 없다.

    집주인과 LH간 임대차 계약, LH와 입주자간 전대차 계약 등 다중계약과 전세대여금 회수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지원기준도 '높은 벽'이다. 전세금 채권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인 '부채비율 90% 심사는 계약기간이 소요돼 집주인들이 꺼리는 부분이다.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되는 학교 앞 원룸·고시원은 또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전용 60㎡ 이하, 가압류가 걸려 있거나 토지 소유자와 건물 소유자가 다르면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조항들도 까다롭긴 마찬가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저소득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의 주거안정이라는 취지에 맞도록 지원액을 현실적으로 늘리고,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