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훈련기' 방산외교 실패… 1년 전 트럼프에 당부한 뒤 '뒷짐'표류하는 말~싱 고속철… 무한경쟁 英·사우디 원전
-
문재인 정부의 해외 수주 실적이 초라하다. 출범 500여일이 넘도록 단 한 건의 해외수주도 성사시키지 못했다.기대를 모았던 한국항공우주(KAI)는 10조 규모의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APT) 수주에 실패했다. 한국전력은 영국 원자력발전 인수 우선협상자 지위를 상실한 데다, 제 2의 바카라 원전을 꿈꿨던 사우디 원전사업은 5개 경쟁국이 모두 예비사업자에 포함되면서 험난한 경쟁이 예상되고 있다.앞서 정부가 5년 간 공들여온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사업마저 2년 연기되면서 당분간 해외 수주 낭보가 전해지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국내 핵심산업 동력 약화로 해외 수주에 적잖은 기대를 걸었던 산업계에서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대형사업의 수주 기회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닌만큼 정부가 총력 대응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文, 방산외교 실패… 1년 전 당부뒤 '뒷짐'KAI의 APT 사업 수주 실패는 문재인 정부의 방산외교 실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공교롭게도 지난 29일 문 대통령이 미국을 찾아 한미정상회담 등을 마무리한 직후 사업자가 최종 발표되면서다. 미 공군은 미국의 노후 훈련기를 대체할 새 훈련기로 보잉-스웨덴 사브사의 BTX-1를 선정하고 92억달러, 약 10조원 규모의 계약을 승인했다.KAI는 수주 실패와 관련해 "보잉사의 저가 입찰에 따른 현격한 가격 차이로 탈락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초 미국 정부는 이번 사업 규모를 약 163억 규모로 추산했으나 실제 계약금액은 92억달러에 체결했다.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만찬자리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 전투기를 더 구입할테니 고등훈련기를 구입해달라"고 제안했다.하지만 이후 정부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대신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 KAI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방산비리 척결에 나서면서 대외 신인도가 추락했다. 뒤늦게 방산비리 수사가 APT 사업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같은해 10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방위산업 전시회를 찾아 "열심히 해서 (수주를) 꼭 성공시켜 달라"고 당부했다.일부에서는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에서 실패한 데는 가격 측면 외에도 한미관계의 방위비분담금, 남북 연락사무소 등이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도 뒤따른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유엔총회서 "한미연합훈련에 비용이 얼마가 드는지 아느냐, 우리가 그 돈을 모두 지불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우리 정부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과 같은 정책에도 불편한 입장을 감추지 않았다.이에 자유한국당 김재경, 박대출 의원은 KAI의 APT 사업 수주가 정부의 외교실패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두 의원은 "대형 방위사업은 기업 대 정부의 계약이지만 정상회담서 수월하게 풀리는 경우가 많은데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에 밀려 국내 방위산업 문제는 논의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박 의원은 "정부는 최저가 입찰방식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수주실패 책임을 통감하고 향후 똑같은 상황이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비판했다.
-
◇ 표류하는 말~싱 고속철… 무한경쟁 원전 수출다른 해외 수주 현장의 사정도 녹록치 않다.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말~싱 고속철도(HSR)사업을 2년 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정부는 HSR 사업 추진을 2020년 5월 31일까지 보류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 새 정부는 지난 5월 막대한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사업 중단을 발표했다. 그러자 사업 중단 위약금 문제가 불거지자 사업 연기로 선회한 셈이다.우리나라는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등과 사업 입찰을 준비해왔다. 우리 사업단은 지난 5년 간 수주전에 나서왔는데 이러한 과정이 2년이나 연장될 처지에 놓였다. 이미 현지 용역 등으로 적잖은 비용이 들어간 상태에서 입찰준비에 완전히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사정이 됐다. 일각에서는 말레이시아의 경제사정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 사업 표류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정부의 원전 수출길도 험난하다. 국내는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해외 수출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경쟁력을 가져간다는 계획에 적잖은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발전업계에 따르면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나라는 영국, 체코,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한국전력은 최근 22조 규모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 우선협상자 지위를 상실했다. 영국 정부가 원전사업에 새로운 사업모델인 규제자산기반(RAB)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신사업 모델 검토로 협상이 늘어지게 된다가 운영비 지출이 커지면서 다른 사업자와도 협상 기회를 갖기로 했다. 한전 외에도 현재 캐나다 브룩필드 등과도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이에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서 "우리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고 수익성이 검증될 때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제 2의 바카라 원전을 기대했던 사우디 원전 사업은 무한경쟁 궤도에 올라섰다. 사우디는 오는 2030년까지 총 2.8기가와트(GW) 규모의 원전 2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최종사업자 선정은 내년으로 예비사업자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를 선정했다.한전은 지난 7월 서울아트센터에 사우디원전지원센터 개소식을 열고 2단계 입찰 대비에 들어갔다. 8월에는 김종갑 한전 사장이 사우디 알술탄 왕립 원자력 신재생에너지원장 등과 면담으로 수주전에 나서기도 했다.원전업계는 원전 수주가 무산된 것은 아니지만 사업 성공이 불확실해지면서 망연자실한 모습이다.원전업계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간 원전 생태계 고사는 순식간에 벌어질 것"이라면서 "수출만이 유일한 대안인데 앞길이 캄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