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앞두고 자녀들 '눈치보기'...결국 '역귀성' 택하는 노년세대"해외여행 가자" 안 모이는 자녀들...차라리 혼자가 편한 명절
  • 명절 증후군은 그간 연휴 기간내 중노동의 대상인 주부를 대상으로 회자 됐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감 뒤에 최근 들어 청·중장년층, 남녀노소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사회양극화, 취업난 및 실업률 증가 등 가계경제가 악화되면서 각 세대별 추석연휴를 보내는 양상도 급변하고 있다. 지난 추석, 나에게는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는지 각 세대별 연휴 천태만상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 註>

    명절에 가족과 모여 지내는걸 평생 당연하게 여겼던 60대 이상 노년층에게 요즘과 같은 명절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귀성길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자녀들이 살고 있는 수도권으로 일찌감치 이동하는 노년층은 물론이고 자녀들이 명절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가자고 해 이에 따라나선 이들도 많아졌다. 

    일부는 자녀들이 손주들과 마음 편히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홀로 추석을 보내기도 한다. 각기 다른 사정이지만 예전처럼 명절이라고 가족들과 즐겁게 보냈다는 만족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 ▲ 역귀성하는 노년세대 모습 ⓒ뉴스원
    ▲ 역귀성하는 노년세대 모습 ⓒ뉴스원

    ◇ 언제·어디서·어떻게 모일지부터 '논쟁'인 자녀들...스스로 귀경길 택하는 노년세대

    경북 영주에 사는 김형석씨(79·남)는 이번 추석을 아내와 함께 서울에 사는 큰 아들 집에서 보냈다.

    자영업을 하는 큰 아들 내외가 반나절 가까이 걸리는 귀성길을 부담스러워 하는 탓에 과감히 결정한 일이었다. 큰 아들네와 1시간 이내 수도권에 살고 있는 작은 아들네도 내심 반기는 분위기여서 먹을거리를 잔뜩 짊어지고 역귀성에 나섰다.

    김 씨는 자녀들은 해마다 명절즈음이면 올해는 어디서 어떻게 명절을 보낼 것인지를 두고 옥신각신해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한창 공부할 나이인 손자, 손녀들도 명절마다 일찌감치 영주로 내려가야하는 게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김 씨는 "아내가 아들네서 음식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모른다며 가기 전에 미리 준비를 다 하고 있는터라 사실상 명절 며칠 전부터 귀경길 준비를 했다"며 "도시에서 직장생활로 힘들 자녀들을 생각해 설이나 추석 중 한번은 이런 식으로 역귀성을 하는게 마음 편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명절이 자녀들에게 오롯이 경제적인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점도 노년이 된 부모세대들에겐 더 큰 부담이다. 더구나 이제 노년층의 자녀세대들도 이미 퇴직을 한 사례가 늘고 있고 퇴직을 앞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예전처럼 풍족하게 지내는 명절을 바라기에는 사정이 여의찮다.

    경기도 평택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강귀녀씨(65·여)는 몇 해 전 아들이 다니던 대기업에서 퇴직하고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최근 몇 년 동안 명절다운 명절을 지내지 못했다. 아들의 퇴직으로 현금흐름이 끊기니 며느리가 씀씀이를 대폭 줄이고 있어 눈치를 보고 있다.

    강 씨는 "평소 생활비는 정해진 수준에서 빠듯하게 살 수 있었겠지만 명절에 갑자기 지출이 커지는데다 아들이 수입이 없는데 부모에게 용돈까지 챙겨주려면 부담이 되는건 이해한다"면서도 "그래도 1년에 몇 번 없는 명절인데 지나치게 비용 운운하며 가족끼리 모이기도 기피하는 아들 내외가 조금은 원망스럽다"고 했다.

    명절이 가족이 함께하는 시기라기 보단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담만 주는 날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노년세대의 고민도 깊어졌다. 가족이 모여 오히려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이들이 명절 후 전문 상담기관을 찾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가족과 노인 상담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이진숙 밝은희망 가족상담센터 상담사는 "노년세대의 경우 오랫동안 가족이 모두 모이는 방식으로 명절을 지내왔고 평소에도 대가족 체제로 살아왔기 때문에 자녀들이 어른의 말을 따라주지 않는 것이 '자녀가 부모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자녀들이 무조건 자신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자녀 부부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고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 추석연휴 인천공항 모습 ⓒ연합뉴스
    ▲ 추석연휴 인천공항 모습 ⓒ연합뉴스

    ◇ 긴 연휴 자녀들은 '해외여행'...'홀로 명절' 택하는 노년세대

    천안에 사는 임태호씨(82·남)는 몇 해 전부터 자녀들이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자고 하는 탓에 명절즈음만 되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6년 전 아내를 먼저 보낸 임 씨에게 명절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아내에게 밥상 다운 밥상을 차려줄 수 있는 기회지만 세 쌍이나 되는 아들, 며느리들이 도통 명절에 모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등 해외여행을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처음 몇 해는 아내도 없는 명절이 어색하고 쓸쓸해 기꺼이 나섰지만 몇 해째 제대로 아내 차례상도 못 차려주고 있으니 마음이 찝찝하다. 자신마저 가버리면 아무도 조상을 돌보지 않겠구나 싶어 죄를 짓는 기분이다.

    올 추석에 임 씨는 차라리 홀로 보내는 것을 택했다. 이젠 몸도 성치 않아 여기저기 자식들 손에 끌려다니는 여행도 내키지 않고 여행가서도 손주들만 돌보고 있느니 혼자 음식이라도 해먹고 쉬는 편이 낫지 싶어서다. 게다가 동네에 임 씨처럼 남아있는 노인들이 꽤나 있어 송편이나 전 등 명절음식도 얻어먹을 수 있다.

    임 씨는 "같이 명절을 못지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자녀들이 보내주는 용돈도 쏠쏠하다"며 "평소에는 용돈받기가 눈치보였던 것도 사실이라 쓸쓸하고 적적하긴 하지만 해외 나가서 고생하느니 혼자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처럼 명절에 대한 인식이 세대마다 달라지는 가운데 여전히 과거 가족들이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던 방식에 익숙한 노년층도 나름의 고충으로 고통받고 있다. 심지어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마음 편히 홀로 지내겠다는 '자발적 독거 명절'을 자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진숙 밝은희망 가족상담센터 상담사는 "특히 홀로 사는 노인들의 경우 공허감과 외로움, 소외감 등의 심리적인 문제가 더 크게 발생하는 명절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들은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위축감이 있기 때문에 이웃이나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돌봄이 더욱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