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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부동산시장이 늘어나는 미분양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 보증사고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미분양도 적체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직접 팔을 걷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미분양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이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데, 정부는 안정화 과정이라고 판단하고 뒷짐을 지고 있다.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시도별 주택구입자금 보증사고 현황'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총 319건·468억원에 달하는 보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한 해 전체 사고 1019건·1548억원과 비교하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주택구입자금보증은 주택분양보증을 받은 사업장의 입주예정자가 금융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주택구입자금의 상환을 책임지는 보증상품이다.
가령 아파트 분양을 받은 A씨가 B은행에 1000만원의 중도금대출을 받고 나서 대출이자나 원금을 갚지 못할 때를 대비해 HUG로부터 보증 발급을 받는다. 이후 실제 상환을 못하면 HUG가 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이다.
HUG 집계를 보면 주택구입자금보증은 2012년 도입된 첫 해 3844억원에서 이듬해 1조794억원, 2014년 2조1159억원, 2015년 3조9043억원으로 급증한 뒤 2016년 3조2308억원, 2017년 2조6477억원, 지난해 2조7181억원 등으로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사고건수는 2014년 103건·85억원에서 △2015년 66건·77억원 △2016년 231건·416억원 △2017년 447건·724억원 등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특히 경남 지역에서 보증사고가 크게 늘고 있다. 경남은 지난달까지 158건·239억원의 보증사고가 발생했다. 올 들어 전체 사고의 절반이 경남에서 발생한 셈이다. 지난해에도 390건·563억원으로 전체 사고의 3분의 1을 경남이 차지했다.
경기 지역은 지난해 158건·295억원, 올해는 116건·160억원으로 경남에 이어 두 번째로 사고가 많았다.
지난해의 경우 부산 80건·101억원과 경북 87건·123억원 등으로 전체 사고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 지역은 올해 3건·5억원, 12건·17억원 등으로 다소 해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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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사고가 많은 지역은 최근 수년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분양과 '불 꺼진 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이 크게 늘면서 부동산가격이 하락한 지역이다.
실제 주택산업연구원 조사 결과 지난 2월 입주기간이 만료된 전국 아파트 단지 입주율을 73.7%로, 16개월 연속 70%대에 그쳤다. 아파트 3채 중 1채가 빈집인 셈이다.
'빈집 사태'는 수도권보다 지방이 심각하다. 수도권 입주율은 82.7%로 전국 평균을 웃돈다. 특히 서울은 86.7%로, 지방의 71.8%보다 크게 상회한다.
이처럼 입주율 양극화 심화는 수도권에 비해 지방에서 수요와 공급의 괴리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는 적은 데 신규 아파트는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악성 미분양이 쌓여가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연구위원은 "분양계약금을 치른 예비입주자 중에서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 목적인 경우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주택 보유를 포기해 중도금 연체가 발생한 것"이라며 "전매가 가능한 지역인 만큼 분양권을 양도할 수도 있겠지만, 시장이 위축돼 거래가 쉽지 않아 연체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보증사고 급증은 향후 부동산시장에서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팀장은 "주택을 구입하면 다른 지출은 줄여도 대출금을 갚는 게 일반적인데, 대출사고가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주택 포기자가 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지방 부동산 침체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이 같은 사고가 급증할 경우 가계부채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황이 이렇자 지방자체단체들도 미분양 해결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경남도는 미분양관리지역 주택 구입시 세 부담 완화 및 금융지원 등을 중앙정부에 건의하는 등 미분양 해소에 '올인'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와 도의원 등 10여명으로 미분양 대책 TF를 구성해 현실적인 대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경남도 측은 "행정에서 미분양 해소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물경제가 워낙 나빠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해소 대책 마련을 위해 민간전문가를 포함한 TF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창원시의 경우 올해까지 500가구 이상 미분양지역 사업 승인을 전면 제한하고, 양산시도 과다 미분양업체의 분양 승인을 취소하는 등의 대책을 세웠다.
이밖에 경북 경주시, 충남 서산시, 강원도 등도 신규 건설사업 승인을 제한하거나 사업 착공시기를 조정하는 등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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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부동산 대책을 컨트롤하는 정부가 정작 시장에 대한 상황 인식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 미분양이 심각하다는 우려에 대해 박선호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올해 업무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금은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 공급과 투기 수요 억제책으로 인해 수요자가 오히려 다양한 선택 기회를 받고 저렴한 주거비로 내 집을 마련하는 요건이 조성되고 있다"며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지표만 볼 것이 아니라 주택경기 침체가 심각한 지방과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미분양 물량이 몰려있는 지방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지표만 보고 시장이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지금의 미분양 적체는 신규 물량이 늘어났다기보다는 입주물량이 쌓이고 거래가 위축됐기 때문으로, 악성 미분양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어 "거래 침체가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에 악성 미분양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택협회 관계자는 "지방 미분양에 대해서 9.13대책에서 나온 양도소득세 중과(2주택자 일반세율 +10%, 3주택 이상 일반세율+20%)를 일반세율(6~42%)로 완화하거나 취득세를 깎아주는 규제 완화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실수요자들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도 검토 대상이다. 9.13대책 이후 무주택자와 1주택자 등 실수요자마저 높아진 대출 문턱으로 주택 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현행 무주택자와 1주택자 LTV(주택담보인정비율) 40%, DTI(총부채상환비율) 40%를 각각 60%와 50%로 완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또 조정대상지역의 서민·실수요자 요건도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생애최초 7000만원) 이하에서 7000만원(생애최초 8000만원) 이하로 완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지방 부동산이 무너지면 결국 수도권도 감당 못 할 수준에 이를 것이 자명하다"며 "정부는 수도권만 보지 말고 세제 완화 등 지방 부동산시장의 수요 창출을 견인할 수 있는 맞춤형 대책을 속히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