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모비스 주총서 엘리엇 '고배당·사외이사 안건' 부결정의선 수석부회장, 현대차·모비스 대표이사에 오르며 체제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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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원 기자

    현대차그룹이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공격을 막아냈다. 고배당과 부적절한 사외이사 등을 포함한 주주제안이 정기주총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과 국민연금이 엘리엇 제안에 대부분 반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손을 들어준 덕분이다. 향후 이어질 엘리엇의 추가 도발에도 방어하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한 '정의선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엘리엇의 반대로 무산됐던 지배구조 개편 재개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22일 열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정기주주총회에서 각각 이사회에 상정했던 안건들이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특히 엘리엇이 주주제안했던 안건들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표대결이 이뤄졌지만,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완승으로 끝났다.

    ◇ 현대차, 현금배당 안건 86% 찬성으로 압도적 승리

    우선 현대차의 경우 이사회가 제시한 1주당 3000의 현금배당과 엘리엇이 요구한 1주당 2만1967원에 대한 서면 표대결이 진행됐다. 현대차가 제시한 안건이 찬성률 86%, 의결권 있는 주식 총 수 대비 69.5%로 가결됐다.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현대차는 세계적 금융 전문가인 윤치원 UBS그룹 자산관리부문 부회장, 글로벌 투자 전문가인 유진 오 前 캐피탈그룹 인터내셔널 파트너, 경제학계 거버넌스 전문가인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 교수를 사외이사로 제안했다.

    반면 엘리엇은 존 Y. 류 베이징사범대 교육기금이사회 구성원 및 투자위원회 의장, 로버트 랜들 매큐언 발라드파워시스템 회장, 마거릿 빌슨 CAE 이사 등 3명 후보를 내세웠다. 표대결 결과, 현대차가 제시한 안건이 각각 찬성률 90.6%, 82.5%, 77.3%로 통과됐다.

    엘리엇은 표대결 직전 의사 발언을 통해 주주들에 지지를 호소했지만, 승패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엘리엇 대표로 참석한 대리인은 "엘리엇은 현대차의 저조한 실적을 해소하기 위해 실질적 조치에 힘써 왔다"며 "이 자리는 엘리엇과 현대차가 대결하는 자리가 아니며, 현대차의 기업구조와 자본관리에 대해 주주들과 논의하는 자리다"고 말했다.

    이어 "엘리엇은 한국 투자자인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현대차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저희의 노력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주주제안이 없는 안건들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과 이원희 현대차 사장,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 등 3명이 사내이사로 선임되는 안건이 가결됐다. 이 외에 재무재표, 정관 변경, 감사위원회, 이사 보수한도의 건도 현대차가 제시한 원안대로 통과됐다. 

  • ▲ ⓒ현대모비스
    ▲ ⓒ현대모비스

    ◇ 현대모비스, 엘리엇의 고배당·사외이사 안건 모두 부결

    현대모비스 주총에서도 표대결이 이뤄졌지만, 엘리엇을 지지하는 주주들은 많지 않았다.

    배당금 의안의 경우 의결권이 있는 주주의 80.4%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서면 투표 결과 69%가 현대모비스 제안에 찬성했다. 현대모비스가 제안한 보통주 1주당 4000원, 우선주 1주당 4050원이 배당금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사회 구성을 기존 9인에서 11인으로 확장하자는 안건에 대해서는 의결권 있는 주주의 21.1%가 찬성해 특별결의 요건인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충족하지 못해 부결됐다.

    사외이사 선임도 엘리엇이 추천한 후보들은 모두 선택받지 못했다.

    로버트 알렌 크루즈 카르마 오토모티브 최고기술경영자는 19.2%가 찬성해 보통 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결됐다. 루돌프 윌리엄 폰 마이스터 전 ZF 아시아퍼시픽 회장은 20.6%만이 찬성해 사외이사에 선임되지 못했다.

    반면 회사에서 제시한 브라이언 존스, 칼 토마스 노이만 사외이사 후보는 각각 72.3%, 73.4%가 찬성해 보통결의 요건을 충족해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이외에 재무제표 승인, 사내이사 선임, 감사위원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 다른 안건의 경우 모두 원안대로 통과했다.

    한편, 엘리엇은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6%, 기아차 2.1%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무산시켰으며, 올해는 고배당과 부적절한 사외이사 등을 주주제안했다.

    글래스루이스, ISS,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대체적으로 엘리엇 제안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 무게추가 기울었다.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현대차그룹 제안에 찬성하는 의견을 내면서 승부가 일단락됐다. 국민연금은 현대차 8.70%, 기아차 6.52%, 현대모비스 9.45%를 보유하고 있고, 기관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 ▲ 현대차 주총에 엘리엇 대표로 참석한 대리인이 발언을 하고 있다.ⓒ박성원 기자
    ▲ 현대차 주총에 엘리엇 대표로 참석한 대리인이 발언을 하고 있다.ⓒ박성원 기자

    ◇ 주총 승리 바탕으로 지배구조 개편 탄력 받을 듯

    현대차그룹은 이번 주총 승리를 발판으로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배구조 개편은 주총과 다르게 따져볼 것이 많다. 해외 외결권 자문사들이 주총과 같이 현대차의 손을 들어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더 이상 미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엘리엇의 무리한 요구에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반대 의견을 제시해 향후 진행될 지배구조 개편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관측이다. 이번 주총을 대비해 의결권 자문사들과 소통했다는 점도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본부장은 "이번 주총 승리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다만, 합리적이고 타당한 개편안이어야 주주들의 동의를 얻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윤 본부장은 "오너 일가의 사익 추구 목적 등이 담긴 지배구조 개편안은 더 이상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나 주주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주주환원 정책과 기업가치 개선 방안 등이 충분히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와 규제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지배구조 개편 안을 마련하고 공식 발표했다.

    엘리엇이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이후 ISS, 글래스루이스 등 해외 의결 자문사들도 잇따라 반대 의견을 내면서 결국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현대차그룹이 추진 중이던 개편 안을 보완하고 재검토하기로 결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주주들의 충분한 이해와 적극적인 지지가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은 더욱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보완해 개선토록 할 것"이라며 “주주들과 시장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폭넓게 소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