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 옛말… 기업 경영권 좌지우지 현정은, 조양호 뭐가 달랐나… 이중잣대-여론몰이 비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데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결정적이었다. 

    국민연금의 투자 지분이 많은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눈치'를 안보고 활동하기 어려워졌다. 국민연금은 전체 운용액 637조 중 약 17%인 109조를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만 294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앞세운 국민연금은 주주이익을 대변한다고 강변하지만 재계는 대한항공사례에서 보듯 여론몰이에 따른 '연금사회주의'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 '거수기'서 294社 좌지우지 핵심주주로 

    2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 행사 대상인 지분 5%이상을 보유한 상장사는 294개나 된다. 

    국민연금은 지난 7월 첫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올해부터 지분 10% 이상을 보유했거나 보유 비율이 1%가 넘는 기업에 대해 의결권 방향을 사전 공시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선택이 다른 투자자들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면서 기업들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기업은 △KT 12.19% △포스코 10.72% △KT&G 10.00% △하나금융지주 9.68% △KB금융 9.50% △네이버 9.48% △신한금융지주 9.38%나 된다. 

    또 시가총액 기준으로 10위권내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LG화학에 각각 10.00%의 지분을 보유해 2대주주로 자리하고 있다. 이외 SK하이닉스는 9.10%, 현대자동차는 8.27%, 셀트리온은 지분을 5.04% 갖고 있다.   


    ◇ 연금사회주의 우려… 현정은, 조양호 뭐가 달랐나

    경제계에서는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을 위해서는 원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국민연금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현정은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기권, 사실상 찬성표를 던졌다. 

    현 회장은 배임 혐의로 고소 당해 현재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국민연금은 "장기적인 주주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현 회장의 재선임안에 기권했다. 

    즉 법원의 '유죄판결'이 나지 않은 것은 현 회장이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나 같은 위치이나 국민연금의 선택은 달랐다. 

    국민연금이 조양호 대한항공 대표이사를 몰아낸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연금 행동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주주 이익과 주주가치를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사안인데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것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전경련은 또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국민 노후 자금의 수익성과 안정성 확보라는 재무적 투자자로서 본질적 역할에 초점을 둬야 한다"면서 "기업의 경영권을 흔드는 일이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고 했다. 

  •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데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결정적이었다. ⓒ 정상윤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데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결정적이었다. ⓒ 정상윤 기자.
    ◇  독립성 어디에… 가이드라인 내린 文 대통령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 이사 및 감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진 것은 대한항공 만이 아니다. 

    SK, 기아차, 현대건설, 효성, 신세계 등 주총서 반대표를 행사했다. 다만 이들기업들은 표대결에서 사측이 유리한 입장이라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앞서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으로 기금운융위원 20명 중 6명이 정부 인사여서 정부나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국민연금 수장은 전 여당의원인 김성주 이사장이 맡고 있다. 전문성과 독립성 논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기금운용본부장 선임을 둘러싸고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개입 의혹이 터져나오면서 독립성 확보가 논란이 됐으나 개선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이번 대한항공 주총을 앞두고 사실상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렸다는 평가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탓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