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승철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이 '예비타당성조사 제도의 개편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비타당성조사 제도가 20년 만에 전면 개편된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비수도권과 똑같은 잣대로 들여다봤던 수도권 사업의 평가 기준은 지역균형발전 평가 항목을 없애고 경제성 평가 비중을 대폭 늘린다. 비수도권 사업은 경제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지역균형에 부합하면 예타 통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뛰어들 수 있는 프로젝트가 늘어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경제성이 낮게 책정된 지방 SOC 사업을 수주할 경우 실익이 있을 지는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열린 '제12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예타 제도란 공공투자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1999년 도입된 것으로, 국가재정법에 따라 총 사업비가 500억원을 넘고 국고 지원금이 300억원 이상인 건설·R&D·정보화 사업과 중기 지출 규모 500억원 이상인 복지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해당 사업의 주무부처에서 타당성 조사를 하기 전 기획재정부에서 미리 검증해 '불요불급'한 대형사업 추진을 막고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도입 20년을 맞아 제도의 전면 개편안을 마련했다.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그간 지속해서 나왔지만, 올해 초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총사업비 24조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계획을 내놓으면서 한층 높아졌다. 정부가 면제 대상 사업을 발표하면서 상반기 중으로 개편안을 내놓겠다고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개편안의 주요 내용은 SOC 사업의 종합평가(AHP, Analytic Hierarchy Process) 단계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가 비중을 달리하고 가중치도 조정하는 것이다. AHP란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 분석 결과를 종합해 사업의 적절성을 계량화된 수치로 도출하는 예타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다. 이 결과가 0.5를 넘으면 사업의 타당성이 확보됐다는 뜻이다.
기존에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 분석에 대한 가중치를 각각 35~50%, 25~40%, 25~35%의 비율로 적용했다. 그러나 앞으로 수도권 사업은 지역균형 항목을 빼고 경제성과 정책성으로만 평가한다. 가중치는 각각 60~70%, 30~40%로 경제성 비중은 크게 늘었다.
이승철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은 "수도권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지역균형 부문에서 감정을 받아 수요가 충분해도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았다"며 "경제성 평가 강화로 통과율에는 큰 영향이 없으리란 것이 내부심의 결과다. 수도권에는 큰 영향이 없도록 제도 개편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비수도권에서는 경제성 평가 가중치를 낮추고 지역균형 평가는 높인다. 각각 30~45%, 30~40%로 조정된다.
균형발전 평가 시에는 -9점부터 +9점까지 가·감정제로 매기던 지역낙후도를 가점제로 변경해 운영한다. 지방의 큰 도시가 낙후도에서 감점 받는 부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광역시를 중심으로 한 비수도권 36개 지역이 감점을 받고 있다.이는 지방 낙후 지역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전반적인 인식과 함께 실제 지역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균형발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임영진 기재부 타당성심사과장은 "비수도권은 균형발전 가중치가 5%p 높아지면서 일부 사업의 통과율이 높아질 수는 있다"며 "가·감점제가 가점제로 바뀌면서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지방 거점도시가 가장 혜택을 많이 볼 것"이라고 말했다.
-
- ▲ 자료사진.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 공사 현장. ⓒ서울시
지방 SOC 사업의 예타 통과율이 높아지면 지방에 민간자본을 끌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개편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건설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대부분의 건설사가 보수적으로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 상황이라 지방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있기 때문이다.
김현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는 "조선, 자동차, 제철, 석유화학 등 지역 기반 산업이 침체되다보니 판교나 강남으로 일자리나 투자가 몰려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 같다"며 "지방에 혁신 거점, 신성장 산업 거점을 만들려면 먼저 기업이 들어갈 환경을 만들어주는 SOC 투자를 늘려야한다"고 진단했다.
건설업계 역시 수주할 수 있는 SOC 사업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SOC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건설사에 이익이 되는 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나랏돈으로 하면 상관이 없지만, 재정이 부족하면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경제적인 측면보다 지역균형발전 측면을 더 많이 고려한다면 수익성이 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수도권이 아니라면 지방에서는 주로 터널이나 도로건설에 주로 뛰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타 제도만 개편됐을 뿐 구체적인 SOC 프로젝트가 발표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계속해서 모니터링을 진행하면서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중견건설 B사 관계자는 "지금 단계에서는 정확하게 SOC 예산이 투입되는 지역이나, 프로젝트가 발표된 것은 아닌데다 SOC 사업 자체가 기간이 워낙 오래 걸리는 사업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남북 경제협력이나 3기 신도시 등 정부에서 발표한 것은 많지만,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속도가 더뎌 구체적으로 시행돼야 효과를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 예타 면제와 민자 시장 활성화에 이어 예타 제도 개선까지 추진되면서 무분별한 개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연초 예타 면제 대상사업 규모만 24조원에 달하고 정부가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공언한 민자 시장 규모도 천문학적 수준이다. 이에 SOC 등에 투입된 자금이 미래에 작지 않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가 이번 기회에 예타 제도를 개선해 지역 숙원사업이나 지역균형발전, 지방 복지행정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며 "SOC, 물류, 교통 등 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만큼 정치적 입김에 따라 무분별한 과잉투자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실제 지역고용과 생활여건 개선 효과, 재원 조달의 효율성 등 가성비와 효과에 대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