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 이틀 전 부랴부랴… 기구 운영방식 불투명민관정 제각각… 일본통 전경련 대신 양대노총 참여
  •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을 위한 민·관·정 협의회가 31일 출범한다. 정부와 국회, 경제단체는 물론 노동·시민단체까지 머리를 함께 맞대는 초당적 규모다.

    하지만 이미 일본의 무역압박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이해관계가 얽힌 여러 단체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협의회 성격상 실효를 거두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공존한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박맹우 자유한국당, 임재훈 바른미래당, 김광수 민주평화당, 권태홍 정의당 사무총장은 29일 국회에서 '일본 수출규제 대책 민관정 협의회'를 출범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는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청와대 회동에서 논의한 내용이다.

    정치권에서는 각 당이 추천하는 5명이 참여한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 정진석 한국당 일본수출규제대책 특위위원장, 채이배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 박원석 정의당 정책위의장 등이다.

    정부에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강경화 외교부장관, 성윤모 산업통산자원부 장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참여한다.

    경제계에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이 이름이 올렸다. 이와 함께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등 양대 노조 위원장이 협의회에 합류키로 했다.
  • ▲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청와대 회동 ⓒ 청와대 제공
    ▲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청와대 회동 ⓒ 청와대 제공
    화이트리스트 결정 이틀 전 출범하는 협의회

    일본 정부는 다음달 2일 각료회의를 열고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논의한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4만여건의 국민의견을 공모했고, 대부분이 찬성 중심이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상당히 오랫동안 대(對) 한국 규제를 절차적으로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도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은 이변이 없는 한 수순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범국가적 의견수렴을 시작하는 우리 측 협의회는 일본 각료회의 이틀 전 겨우 출범한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 정령이 올라가기 전에 출범하게 돼서 다행"이라며 "예상보다 반 주 정도 늦어졌지만 아주 늦은 것은 아니다"고 했다.

    노조에 시민단체까지 다함께? 일본통 전경련은 제외

    지나치게 많은 참여 단체의 면면도 이번 협의회의 대책마련 추진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먼저 국가외교 사안에 양대 노조가 참여하는 것을 두고 협의과정에서부터 이견이 나왔다. 협의회 측은 "피해의 주체가 되는 곳이 기업인데, 노조는 기업의 구성원이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반대의견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협의회 구성에 참여한 야당 고위 관계자는 "외교와 경제가 맞물린 사안이라 보안에 민감한 안건들이 자유롭게 논의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초당적 국가적 의견 수렴을 명분으로 노조 측 참여가 결정됐다"고 말했다.

    향후 일본 제품 불매운동 등을 주도하는 시민단체의 참여를 검토하는 것도 우려를 낳는다. 정부와 여당이 이번 양국 갈등을 일본이 경제침략으로 규정하는 등 감정적 대응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자칫 대책마련이라는 협의회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대일본 규탄대회에 그칠 수 있다는 목소리다.

    주요 경제단체 중 일본과 두터운 인맥을 맺고 있는 '일본통' 전경련은 배제된 것도 아쉬움을 남긴다. 윤 사무총장은 "전경련은 최근 사정을 확인해보니 후원사가 하나도 없어 경제단체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경련은 일본의 같은 성격의 단체 '게이단렌'과 한일 재계회의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가장 먼저 일본 경제산업성에 화이트리스트 배제 철회를 요청하는 정책건의서를 전달하는 등 꾸준한 역할을 이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청와대 회동 ⓒ 청와대 제공
    여당은 '낙관' 야당은 '심각'… 동상이몽

    일본 수출규제를 바라보는 여야의 극명한 시각차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9일 당 최고위에서 "WTO 제소 등 우리 정부의 차분한 대응에 일본은 구체적 명분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현장을 방문하면서 일본이 규제를 해도 우리가 능히 이겨낼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설훈 최고위원도 "국제 사회에서 우리를 지지하는 우군이 늘고 있고, 여론전에서 우리가 앞서고 있다"고 했다.

    반면 야당의 시각은 심각하다.

    한국당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일본과의 싸움을 해결하지 않고 계속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일본이 1945년 이후 가장 거칠게 나오고 있고, 미국이 한일 분쟁 조정에 머뭇거리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중국에 거는 도박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협의회 운영방식도 불투명, 추경 등 변수도 많아

    협의회는 31일 첫 회의에서 기본적인 실무 보고를 받고 기구 운영방안을 논의한다. 업무지원은 정부 측인 기재부가 맡았다.

    당장 협의회 의장을 누가 맡을 것인지, 정례 회의를 언제 열 것인지 등 기본적인 운영방식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내달 1일 국회에서 처리할 예정인 일본의 경제 보복 철회 요구 결의안과 추경 등 산적한 현안이 많아 속도를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여야는 엄중한 외교안보 상황을 고려, 7월 임시국회 정상화를 합의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국당 이종배 정책위부의장은 당 회의에서 "정부는 아직 일본 수출보복 대응 소재부품 육성안에 대해 2천억원을 요구하면서 세부계획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8월1일 추경처리를 원내대표간 합의했지만, 정부가 제출할 자료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추경처리를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