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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현 롯데그룹 화학BU장(사장)이 롯데케미칼과 롯데첨단소재를 합병한 통합 롯데케미칼을 이끈다. 김교현 대표이사 아래 기초소재사업과 첨단소재사업으로 나눠 각각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이사(부사장)와 이영준 롯데첨단소재 PC(폴리카보네이트)사업본부장(부사장)이 맡는다.
석유화학산업 다운사이클 진입으로 실적 부진을 겪는 가운데, 추진 중인 투자계획 등의 책임자 교체는 자칫 리스크를 키울 수도 있다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변화 보다는 안정을 도모하면서도 사업 부문을 세분하면서 고부가 중심의 다각화, 비핵심 자산의 구조조정 등 내실을 다져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롯데그룹은 정기 인사를 통해 그룹의 주요 성장축인 롯데케미칼에 대한 인사를 이 같이 단행했다.
롯데그룹 측은 이번 인사와 관련 "고객과 비즈니스 특성을 고려해 양 체제로 운영된다"며 "두 사업 분야의 특성이 상이한 만큼 각 영역에서 핵심 역량을 강화해 롯데케미칼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탄탄하게 구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교현 사장, 임병연 부사장 등 3인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돼 온 만큼 이번 인사로 김 사장의 명목상 지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김 사장이 통합 롯데케미칼을 이끈다고 밝힌 만큼 그룹 화학사업에서 김 사장의 입지가 더 탄탄해진 셈이다.
신 회장은 기초소재사업 중심의 롯데케미칼이 고부가 제품 중심의 롯데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하는 만큼 화학사업의 경력이 풍부한 김 사장이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롯데케미칼은 범용제품 위주의 기초 유화소재에 강점이 있었던 반면 첨단소재 분야에서는 큰 힘을 싣지 못했다. 2016년 삼성SDI 화학 부문 및 삼성정밀화학을 인수해 롯데첨단소재를 설립하면서 점차 고부가 소재에 대한 의지를 보여 왔고 내년엔 양사를 통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다.
또한 김 사장이 해외사업에서 보인 역량에도 무게를 두고 인사를 단행했을 것이라는 평이다. 롯데케미칼은 현재 미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설비투자를 앞두고 있다.
특히 롯데케미칼이 말레이시아 자회사인 롯데케미칼타이탄을 통해 진행 중인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조성사업은 신 회장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만큼 동남아시아 사업에서 역량이 검증된 김 사장에게 책임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 사장은 2014년 롯데케미칼타이탄의 대표이사에 올라 당시 100억원대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을 2016년 5130억원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 2017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에 임명됐으며 이어 인도네시아에 4조원을 들여 기초유분생산단지 조성사업을 맡게 됐다.
이 사업은 롯데케미칼이 롯데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업계획이 변경됐다.
완공 목표가 당초 2021년에서 2023년으로 미뤄지는 한편, 롯데첨단소재가 생산하는 인조대리석의 원재료인 3차 부틸알콜(TBA)의 생산설비가 추가되면서 사업 규모도 5조원으로 불어났다. 신 회장이 발표한 '2023년까지 50조원 투자' 계획 중 10%가 여기에 투자되는 셈이다. -
김 사장은 또 롯데케미칼이 미국에 추가로 가스화학설비를 짓는 투자계획 추진에도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12년 신 회장 지시로 셰일가스 TF팀을 구성해 북미 셰일가스 기반의 사업을 검토한 뒤 미국 법인 롯데케미칼USA를 통해 에탄 분해설비(ECC)를 짓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이 구속수감으로 자리를 비우게 됐는데, 그 사이 김 사장이 설비 완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설비는 나프타보다 저렴한 셰일가스를 투입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프타 분해설비(NCC)가 10%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보이는 반면 이 설비는 3분기 기준 24.5%에 이르는 높은 이익률을 기록하는 등 롯데케미칼이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다.
국내 석유화학업계 불황 속에서도 롯데케미칼 미국 공장이 높은 수익성을 창출하면서 공장 증설 등 다양한 방안이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케미칼 측은 "김 사장이 전면에 나서는 역할을 맡게 돼 기존 대표이사 체제가 아닌 다른 형태로 체제가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보니 롯데첨단소재와의 합병이 실시되고 조직개편이 이뤄진 뒤에야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통합 롯데케미칼은 이번 인사로 큰 틀이 짜여졌다. 8월 이사회에서 완전자회사인 롯데첨단소재와의 합병을 결의한 바 있다.
다만 덩치가 큰 두 회사가 합쳐지는 만큼 중복되는 사업부를 정리하는 등 일부 과감한 조직개편도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하부 조직개편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김 사장이 통합 롯데케미칼을 총괄하게 되면서 전체적인 사업 전략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업 부문을 양분화한 만큼 전문성은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임병연 부사장은 기초소재사업 대표를 맡게 됐다. 첨단소재 사업은 이영준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해 이끈다.
임 부사장은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 김 사장과 같은 호남석유화학 출신으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롯데그룹 정책본부에서 근무했다. 그룹 내 주요 M&A를 담당하면서 투자전략 부문에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실제 황각규 부회장 주도 M&A 실무작업을 맡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첨단소재와의 합병을 갈무리하는 것은 물론, 비핵심자산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에도 관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영국 PET생산·판매 자회사인 'LC UL(LOTTE Chemical UK Limited)'를 매각했고, 이후에도 비핵심자산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영준 부사장은 1991년 삼성종합화학으로 입사해 제일모직 케미칼연구소장, 삼성SDI PC사업부장을 거쳤다. 이후 2016년 롯데첨단소재 출범 후에는 PC사업본부장을 맡아왔다. 첨단소재 분야의 전문성을 한층 끌어올리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 출신 전임 대표가 물러나고 삼성 출신의 신임 대표가 선임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며 "내년 합병할 법인과 관련, 롯데그룹이 통합과 전문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이 엿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