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경 규제 불구 실적 개선 견인 못해마이너스 정제마진 속 당기순이익 규모 사상 최악SK이노베이션, '영업익 1조2692억 불구 당기순익 657억 그쳐에쓰-오일 당기순익 865억 규모… GS칼텍스 4000억원대 선방
  •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정유업계에 '어닝쇼크'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4분기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시황이 악화되면서다. 총 1조원의 영업실적을 기록한 2018년 4분기 못지않은 저조한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게다가 올해부터 시행된 환경규제 '국제해사기구(IMO) 2020' 효과도 신통치 않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4사 가운데 상장 기업인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은 최근 지난해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2692억원으로, 전년 2조1031억원에 비해 39.6% 감소했으며, 에쓰-오일 역시 6394억원에서 4491억원으로 29.7% 줄었다.

    문제는 당기 순이익이다. 각각 657억원, 865억원에 그치며 영업이익 규모에 한참 못미치는 수치를 보였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모회사 발표시기에 맞춰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GS칼텍스의 작년 연간 순이익은 4000억원이 넘어서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기순이익 차원에서 SK에노베이션과 에쓰-오일 대비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미국 셰일가스 투자 광구의 가치가 국제유가 약세 등의 영향으로 폭락하면서 1조2천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갉아 먹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유사 수익의 핵심지표인 정제마진이 4분기 급락한 것도 한 몫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의 비용을 제외한 수치다. 국내 정유업계에서는 통상 4~5달러의 정제마진을 손익분기점(BEP)으로 본다.

    실제 정제마진이 BEP는 커녕 역마진을 시현하고 있다.

    지난해 9월까지 배럴당 7.7달러를 기록했던 정제마진은 10월 4.1달러, 11월 0.7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12월에는 -0.1달러로 급락했다. 정제마진이 월별 평균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1년 6월 이후 18년 만이다. 주간 단위로는 11월 3주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올 들어서도 1달러를 하회하고 있다.

    정제마진이 단기간 내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이 정유업계를 더욱 암울하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업계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이었다. IMO 2020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국내 정유사들이 저유황유 생산에서 경쟁력이 있으며 미중 무역합의 1단계가 성사되면서 중국의 석유제품 수요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었다.

    IMO 2020은 선박연료유의 황 함유량 상한선을 기존 3.5%에서 0.5%로 대폭 강화하는 규제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사들은 앞 다퉈 저유황유 생산설비 투자를 늘리면서 '호황'에 대비해왔으나, 제품값 상승효과가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다.

    증권가 일각에서도 IMO 규제 시행 효과로 경유, 저유황 연료유 등 고부가가치 석유제품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올해 정제마진이 8.8달러까지 상승해 국내 정유사들의 성장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 ▲ 원유운반선. ⓒ연합뉴스
    ▲ 원유운반선. ⓒ연합뉴스

    하지만 새해가 한 달가량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반등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규제 기준을 충족하는 싱가포르 VLSFO(Very Low-Sulphur Fuel Oil) 가격은 지난달 미터톤(mt)당 700달러를 웃돌다가 올 들어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 22일 기준 64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또 황 함량 0.001% 국제 경유가격은 배럴당 83달러에서 최근 76달러까지 하락했다.

    미국에너지관리청(EIA, The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도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IMO 규제가 정제마진에 미치는 영향을 하향조정했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2~1월 사이 IMO 등에 따른 경유 마진개선을 기대했으나, 현실화하지 않았다"며 "중국과 인도의 성장률 둔화, 저조한 난방유 수요 등 경유 마진은 오히려 축소됐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미중 무역합의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면서 중국발 수요 증가는커녕 중국과 신흥국을 중심으로 정제시설이 늘어나 과잉공급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동남아시아 정유사에 비해 운임과 운송비, 세제 혜택 등에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중국산 석유제품 생산량 증가가 정제마진을 끌어내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중국의 지난해 11월 석유제품 수출량도 전년대비 63.5% 증가했다. 중국의 정제처리량은 신규 설비 증설 등의 영향으로 전년대비 9.6% 늘어나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한석유협회에서는 올해 세계 석유 공급 폭이 17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정제능력이 약 90만배럴 더 늘어난 데다 추가로 건설 중인 정제설비가 118만배럴에 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OPEC이 아닌 브라질, 노르웨이 등에서 대형 신규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이란산 석유가 다시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협회 관계자는 "중국의 정제능력 증가 규모가 연 평균 1.5% 수준이지만, 지난해 5%로 크게 늘었다"며 "국내 정유업계의 가장 큰 경쟁 국가는 중국으로, 중국의 공급량이 늘면서 수출 등 업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중동 위기에 따른 유통비 증가도 악재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 따라 이달 초 중동과 중국 기준 탱커용선료는 하루당 10만5818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달 8만1365달러보다 30%, 전년동기 3만4674달러에 비해 205% 증가한 수치다.

    이밖에 국제유가 변동에 따라 경영 불확실성도 확대됐다. 유가 상승은 단기적으로 기존에 비축해 둔 원유의 재고평가 이익으로 작용해 호재다. 하지만 급격히 상승한 유가는 수요 위축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마진을 악화시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 들어서도 정제마진이 0%대에 그치고 있다"며 "당장 급격한 반등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정제마진이 악화되면서 정유업계의 다운사이클이 지속되고 있다"며 "업황 부진이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 계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