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도 손해' 여파… 1분기 실적 적신호항공유 판매 부진 이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후폭풍 우려도
  • ▲ 중한석화 우한 에틸렌공장. @SK이노베이션
    ▲ 중한석화 우한 에틸렌공장. @SK이노베이션

    팔아도 손해를 보는 수준의 정제마진이 지속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항공유 판매 부진 및 좁아진 수출길 등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우한 폐렴' 여파도 만만치 않다. 정유업계 상황은 해가 바뀌었는데도 녹록치 않다.

    3일 업계에 따르면 1월 3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0.3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3주 -0.6달러로 첫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이날까지 마이너스와 1달러 이하를 오가는 등 10주 연속 제자리걸음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비 등을 뺀 것으로, 일반적으로 배럴당 4달러는 돼야 수익이 난다고 본다. 현 수준으로는 팔수록 손해를 보는 셈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추락을 거듭한 정제마진은 지난해 12월 -0.1달러까지 내려왔다. 월 평균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1년 6월 이후 18년 만이다. 월별 평균치 기준 지난해 10월 배럴당 4.1달러, 11월 0.7달러, 12월 -0.1달러에 불과했다.

    정제마진 약세로 국내 주요 정유사들의 실적 부진 우려가 현실화됐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2692억원으로 전년대비 39.6% 감소했다고 최근 공시했다. 실적을 견인하던 정유사업이 정제마진 하락 탓으로 쪼그라들면서다.

    에쓰오일도 실적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4491억원으로 전년대비 29.7% 줄어들었다. 역시 정제마진 하락 여파다. 업계에서는 이번 주 실적 발표를 앞둔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우한 폐렴 이슈도 정제마진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우한 폐렴 확산으로 인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석유 생산량 축소, 대중교통 대신 자가용 운행 증가로 단기적으로는 정제마진이 상승하겠지만, 글로벌 석유제품 과잉으로 2~3개월 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당장은 우한 폐렴이 확산되면서 항공기 노선 축소에 따른 항공유 판매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항공유의 판매 비중은 정유업계 전체 매출의 10~15%를 차지해 전체 실적을 흔들만한 수준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인천~우한' 노선의 운휴기간을 3월 말까지 연장키로 하는 등 중국 노선을 대폭 축소시켰고, 아시아나항공도 중국 관련 3개 노선을 잠정 중단키로 결정했다.

    다른 항공사들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가운데 우한 폐렴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뿐만 아니라 호주, 미국, 독일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해외여행 자체가 위축되는 분위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우한 폐렴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에너지 전문지 S&P 글로벌플래트는 우한 폐렴 영향으로 향후 2개월간 전 세계 항공유 수요가 하루 평균 5만~15만배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현재 전 세계 항공유 수요(하루 711만배럴)의 0.7~2.1% 수준이다.

  • ▲ 인천공항 출국장. ⓒ연합뉴스
    ▲ 인천공항 출국장. ⓒ연합뉴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정유업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출에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매출의 절반가량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며 수출물량 가운데 중국 비중이 20% 안팎이다. 이번 사태로 수출 차질에 따른 직접적인 타격은 물론, 자동차·건설 등 경기 위축에 따른 간접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업황 침체의 주요 원인이었던 제품 수요 위축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중국이 세계 석유제품 수요의 14%를 차지하는 만큼 우한 폐렴 공포로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의 중국 전문 연구기관 '플리넘(Plenum)'은 질병 억제 정책으로 중국 1분기 경제성장률이 4%대로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지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우한 폐렴 확산 영향에 따른 운송수요 감소 우려로 국제유가가 하락했다"며 "당분간 유가 하락과 글로벌 수요 위축에 따른 정제마진 약세로 정유업종 투자심리가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올해 1월부터 적용돼 당초 고부가가치 석유제품 수요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국제해사기구(IMO) 2020' 규제 효과도 생각보다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IMO는 선박유의 황 함량을 기존 3.5%에서 0.5%로 낮추는 규제를 1월부터 시행했지만, 예상과 달리 정제마진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손지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정제마진은 IMO 규제에 대한 기대감에 역행하면서 기록적 약세를 지속하고, 유가마저 하락하고 있어 과잉공급 우려를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하향세를 그리고 있는 유가도 문제다. 이는 우한 폐렴이 확산하면서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원유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두바이유는 지난달 31일 58.45달러, 서부텍사스유(WTI)는 51.56달러에 각각 거래돼 지난달 17일 이후 10.2%, 11.9% 각각 떨어졌다.

    유가가 하락하면 앞서 사둔 원유의 재고가치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경우 정유사들의 재고자산평가가 손실로 돌아설 수도 있다. 지난해 4분기부터 올 초까지는 꾸준한 오름세를 보였지만, 국내로 들어오는 기간이 통상 한 달여인 점을 감안했을 때 평가손실도 예측 가능한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한 폐렴 확산으로 인한 경기 부진 우려감에 유가도 떨어져 평가손실 발생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며 "올해 1분기 상황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