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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로 제2의 외환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2중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거론됐던 한일 통화스와프가 집권 여당의 총선전략으로 말미암아 물 건너가는 양상이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의 외화보유액은 4002억1000만 달러다. 한 달 전보다 89억6000만 달러 줄었다. 이는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1월 117억5000만 달러가 준 이후 가장 많이 줄어든 것이다. 남은 금액은 2018년 5월 이후 가장 적다.
한은은 코로나19가 팬데믹(범유행)으로 번지면서 기축통화(基軸通貨)인 달러화 품귀 현상이 벌어졌고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시장에 달러화를 풀었다고 설명했다.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외화보유액이 넉넉지 않은 만큼 안전장치로 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1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비상시에 원화를 맡기고 연준으로부터 최대 600억 달러까지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한미 통화스와프로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게 경제전문가의 견해다. 2015년부터 외화보유액 확대 필요성을 제기해온 세종대학교 김대종 경영학부 교수는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하는 외화보유액은 8300억 달러로, 현재 잔액은 권고액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면서 "한미 통화스와프 효과는 단기에 그칠 수 있으므로 2중 안전장치로 한일 통화스와프를 다시 맺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700억 달러 규모의 한일 통화스와프는 2012년 종료된 상태다.
김 교수는 "1997년 단기외채 비율이 상승하면서 일본계 자금유출이 시작됐고 이후 도미노처럼 외국인이 일시에 자금을 회수하면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달 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일본과 통화스와프가 이뤄지는 게 옳다"면서 "과거에 오래 지속한 일본과의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어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은 일본 측 입장 때문에 연장되지 않은 것이어서 일본의 입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그러나 정 총리 설명과 달리 한일 통화스와프는 총선을 앞둔 여당 등 집권 세력의 사정으로 말미암아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다.
조선일보는 2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 말을 인용해 "한일 통화스와프는 힘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에 공식 제안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정 총리는 한일 통화스와프 재체결이 옳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칼자루는 일본 측이 쥐고 있다는 식으로 공을 떠넘겼으나 제안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가 통화스와프 체결이 어렵다고 지레 선을 긋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총선을 불과 10여일 남긴 상황에서 여당의 선거전략으로 한일 통화스와프가 배제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전략으로 반일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지난달 31일 전국의 후보들에게 나눠준 '21대 총선 전략홍보유세 매뉴얼'을 보면 여당은 미래통합당에 '구태 꼰대 기득권' 정당이란 이미지를 덧칠하면서 친일 프레임을 씌우려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통합당에 대해 "일본 아베 정권을 옹호하며 일본에 한마디 비판도 못 한다. 우리 국민은 이번 선거를 '한일전'이라고 부른다"며 또 한 번 반일몰이에 열중하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게 보니 정부가 여당을 무시한 채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에 발 벗고 나서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치가 다시 한번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다. 김 교수는 "한일 관계가 과거사 문제 등으로 최악의 상황이지만, 이제는 양국 모두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형국이기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며 "이 문제는 청와대와 정부만이 해결할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한일 통화스와프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