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산업·수출 비상등… 내년 1% 저성장 예상당국 "본예산 조기 집행" 침체된 내수 살리기 역부족추경·감세 등 긴급 처방 필요… 경제 구조개혁도 속도내야
  • ▲ 여의도 빌딩숲 ⓒ뉴데일리DB
    ▲ 여의도 빌딩숲 ⓒ뉴데일리DB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 정국 속에서 저성장 경고등이 잇따라 켜지고 있다. 경제 수장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도 한국 경제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현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내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가 지속되며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한 재정 역할론에 동의하면서도 내년 상반기 본예산을 조기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상계엄 사태 후유증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대외 신인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점을 감안할 때 경제 회복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역할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최 부총리는 지난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가지 하방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내년 성장률 전망은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잠재 성장률(2%)보다는 소폭 밑돌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성장 마지노선으로 꼽히는 2%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 소비가 예상보다 부진하고 수출 동력도 약해지고 있다는 진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내년 경제 성장률을 2.0%로 하향 조정했으며 한국은행도 이를 1.9%로 낮췄다. 골드만삭스도 내년 성장률을 1.8%로 하향 조정했다.

    실제로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산업 생산, 소비, 투자 지표 모두 감소하는 등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산업 생산(-0.3%), 소매 판매(-0.4%), 투자(-5.4%) 지표가 5개월 만에 동반 감소하며 경제가 더 깊은 침체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매 판매(소비)는 두 달째 내리막을 보이고 있다.

    산업 경기도 이미 얼어붙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제조업의 이달 업황 현황은 81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100보다 아래일 경우 업황이 전월보다 악화됐음을 의미한다. 경제 성장의 핵심 축인 수출도 흔들리고 있다. 올해 11월까지 수출은 8.3% 증가했지만 내년에는 수출 증가율이 1%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재정 역할론에 공감하면서도 내년도 예산의 75%를 상반기에 배정하는 등 본예산의 조기 집행을 우선시한다는 입장이다. 최 부총리는 "내년 예산이 1월 1일부터 시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취약계층 일자리·복지 지원,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된 11조 6000억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방자치단체의 국고 보조사업에 대해 국비를 우선 교부하거나 교부 기간을 단축하는 신속 집행 방식으로 보조금 재량 지출을 상반기 3조원 늘려 집행할 계획이다.
  • ▲ 부산항 ⓒ연합
    ▲ 부산항 ⓒ연합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산 조기 집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경제 불씨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긴급 처방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만으로는 민생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고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계기로 미국발 리스크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불황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기준 금리 인하를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 부양책으로 추경이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재정당국에 따르면 역대 정부에서 1분기에 추경을 편성한 경우는 1998년, 2020년, 2021년, 2022년 등 4차례에 불과하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19일 "한국 경제는 내수, 투자, 수출 등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인 난국에 처해 있다"며, "재정 역할 확대를 통해 최소 30조원 이상을 미래 먹거리와 민생 경제에 투자해야 한다"고 슈퍼추경 편성을 촉구했다. 김 지사는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로서 11조원의 추경을 편성해 경제 성장률을 2%대에서 3%대로 끌어올린 경험이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7일 국회에서 "현재 재정은 긴축 수준이라 추경에 동의한다"며 "경기 하방 압력이 큰 상황에서 추경 처리는 빠를수록 좋다"고 언급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추경 등을 여야가 합의해 우리 경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모습을 빨리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를 단기간에 부양하기 어렵다"며 "내년 초 추경을 통해 재정 지출을 늘리는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경과 함께 경제활성화를 위해 감세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높은 세율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 여력을 낮추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만큼 법인세와 상속세 등을 완화해 경제성장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업 경쟁력 강화와 근로의욕 고취로 경제 안정과 세수 증가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율을 낮추는 감세 정책은 세금을 깎아주기 위한 게 아니라 성장을 유인해 결과적으로 세금을 더 걷기 위한 것"이라며 "1970년대 이후 90여개 경기 부양책을 분석한 결과 감세 정책은 다 성공했고 지출 정책은 거의 다 실패했다는 보고서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외 경기 급락기 예방책으로 거론되는 자동차와 가전 개별소비세(개소세) 인하도 있다. 제조업 전반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비 활성화 차원의 지원책이 유지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요소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재정당국은 3년간 유지해 온 자동차 개소세 인하 조치를 종료한 바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한국 경제는 2% 내외 수준으로 추정되는 잠재 성장률을 벗어나 자칫 장기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며 "통화정책은 물가 및 금융시장의 안정 외에도 거시경제 안정화 수단으로서 국내 경기의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금융 여건을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재정정책에선 성장 경로 이탈과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경기는 물론 추가적인 재정 여건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다만 단기적인 재정 처방보다는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규제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의견도 있다.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은 경제 구조개혁을 통한 생산성 개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노동, 교육, 연금, 의료 개혁이 탄핵으로 멈춰진 상태다.

    배병호 한은 경제모형실장은 "향후 잠재 성장률을 효과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하는 한편, 예상되는 미래 경제 구조 변화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그간 진행해 온 구조개혁 관련 연구 결과들을 감안해 노동시장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유도하는 가운데 기업 투자 환경 개선 및 혁신 기업 육성 등을 통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