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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했던 철도청 부활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교통부가 철도산업구조 개편을 위해 의뢰한 철도안전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들여다보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한국철도시설공단(철도공단)을 통합해 과거로 회귀하는 대신 백스톱 원칙 아래 지금과 같은 상하분리 상태에서 미흡한 부분을 개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5일 국토부에 따르면 코레일과 ㈜에스알(SR) 통합 문제 등을 검토하려고 연구용역을 진행하던 중 2018년 오송역 단전사고와 강릉선 KTX 탈선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감사원은 철도안전과 관련해 국토부가 연구용역을 통해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제시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철도현장 안전관리시스템 개선방안 △철도안전관리 조직·인력 개선방안 등 2가지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철도현장 안전관리시스템 개선방안은 이원화된 건설·유지보수 업무와 철도 관제의 독립성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에 접근한다. 철도안전관리 조직·인력 개선방안은 정비·유지보수 인력과 열차 내 안전인력의 적정성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과 조직이 부족한지, 부족하다면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등을 진단하게 된다.
뉴데일리경제가 한국교통연구원이 수행한 '철도현장 안전관리시스템 개선방안'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연구용역은 철도건설은 철도공단,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맡는 현재의 상하분리 원칙을 유지하면서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는 개선안을 도출했다.
이번 보고서를 보면 2013년 202건이던 철도사고는 2014년 193건, 2015년 120건, 2016년 101건, 2017년 92건, 2018년 69건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철도전문가 사이에선 상하 분리 이후 철도 관련 사건·사고 발생 횟수가 과거 철도청 시절과 비교해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오송역 단전사고, 강릉선 KTX 탈선처럼 '후진국형 철도사고'의 재발을 막는데 철도청 회귀가 답이 될 수 없다는 방증이다. -
연구용역은 먼저 철도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가칭)'철도안전연차보고서'(이하 안전보고서)를 도입할 것을 제언했다. 사고가 난 뒤 위에서 시키니까 그때만 반짝 신경 쓰는 땜질식 안전관리로는 철도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기존 톱다운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안전문제를 진단·해결하는 '한국형 철도안전관리체계'를 도입하자는 게 골자다. 사고수습 대신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철도운영자와 시설관리자에게 각각 안전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당근과 채찍으로 현장 이행력을 높인다는 내용이다. 우수기관에는 공공기관·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 가점을, 안전보고서에서 언급되지 않은 내용으로 주요 사고가 나면 안전관리수준평가에서 감점을 주는 방법을 제안했다.
안전보고서에는 철도당국이 철도안전법에 따라 5년마다 세우는 철도안전종합계획에 맞게 설정한 자체 안전목표와 자체 안전감사를 벌여 확인한 철도운영·시설관리의 취약점과 오작동 사례, 대응전략 등이 담긴다. 각 기관이 제출하는 안전보고서를 묶으면 그 자체로 '국가 철도안전보고서'로 활용이 가능해진다. 보고서가 쌓일수록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점과 개선사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철도안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
연구용역은 강릉선 KTX 탈선사고 등으로 불거졌던 시설관리 문제에 대해 크게 2가지로 해법을 제시했다. 그동안 철도노조 등은 현재의 상하분리 체계가 안전사고의 원인이라며 통합을 주장했다. 하지만 연구용역은 과거 구조개혁의 대상이었던 철도청으로의 퇴보 대신 변화와 개선을 통한 전진을 해결책으로 내놨다.
보고서는 시설관리를 위해 긴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작업시간 확보를 꼽았다. 현재 상시·정기 정비는 열차운행이 멈춘 야간에 이뤄진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3시간 안에 모든 정비를 끝마쳐야 하는 실정이다. 보고서는 장비 투입·반출시간을 고려할 때 실제 작업시간은 2시간 남짓이 전부라고 지적했다. 2002년 이전엔 작업시간이 4시간이었지만, '시민편의 증진'이란 명목으로 작업시간을 줄였고 이후로 민원을 두려워해 이전 기준으로 되돌려놓지 못하면서 철도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조만간 경부고속철도 1단계 구간이 개통 20년을 맞으면서 집중 개량 등 단시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작업이 상당수 증가할 거라고 우려했다.
연구용역은 스위스 국영철도사(SBB)를 우수 사례를 들었다. 상시 보수시간이 하루 총 5시간으로, 실제 작업가능시간이 3시간에 불과했으나 제도를 개선해 현재는 하루 8시간, 실제 작업시간은 6시간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우리도 도시철도와 국가철도 모두 선로배분시행지침 등을 통해 추가 작업시간 확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일상적인 작업은 철도안전관리체계 기술기준, 중요한 개량은 철도의 건설 및 철도시설 유지관리에 관한 법률을 보완해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보수 작업시간 확보는 코레일도 공감하는 내용이다. 손병석 코레일 사장은 지난해 국토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심야작업 현장을 살펴보니 직원들 고생이 많은데 작업시간이 부족하다. 3시간 반은 확보해야 하나 실질적으로는 2시간 반밖에 안 나온다"면서 "30분쯤 더 여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코레일이 위탁 처리하는 유지보수 업무를 철도공단에 넘기는 방안에 대해선 "관련 중장비가 역을 통해 들어가 레일 위에서 움직인다"며 "운영기관에서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반대했다. -
보고서는 안전한 시설관리를 위해 철도설계 단계부터 유지·보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건설비를 아끼려고 설계할 때 유지·보수 통로 등 철도시설 관리에 필요한 설비를 빼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철도시설비용을 건설비로 착각하면 곤란하며, 설계·시공자는 프로젝트 매니저 관점에서 봐야지 건설관리자 관점은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지·보수 통로나 지역의 특별한 요구 등을 철도설계 초기단계에서 고려하는 게 철도 개통 이후에 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고 구현하기도 쉽다는 견해다.
감사원도 철도안전 관리실태 감사에서 코레일과 철도공단이 철도건설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철도안전 확보에 도움 된다는 의견이다.
보고서는 철도시설관리 업무도 시설물, 선로, 전기·신호·통신 등 분야별로 도식화해 현장에서 습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체계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
연구용역은 문제가 됐던 코레일의 셀프 관제에 대해서도 수술이 필요하다고 봤다.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코레일 소속 관제사가 SRT보다 늦게 도착한 KTX를 먼저 보낸 비율이 11.8%, 그 반대의 경우는 2.5%로, 4.7배 차이 났다. 관제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보고서는 관제업무가 국가사무인 데도 지나친 경영자의 업무지시에 예속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고 지적했다. 관제사가 안전보다 코레일의 정시율과 효율성에 맞춰 업무를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관제센터장과 관제부장에 관제사 업무를 전혀 모르는 인력이 임명되는 것을 예로 들었다.
보고서는 역 승강장에서 관제업무를 보는 소위 로컬관제원은 관제자격증명이 있어야만 하지만, 코레일이 자격자가 아니어도 일정 교육을 받으면 업무를 맡겨 부실 관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용역은 현재의 관제는 많은 열차의 이동을 확보하는 철도교통관제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를 철도안전관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열차 운행을 중단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로컬관제원에 대한 코레일의 자체 규정을 보완토록 지시하고 전문관제사 직급을 만들어 처우와 근무여건을 개선해야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철도전문화 대학에 항공대 관제학과 수준의 철도관제학과를 설립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또한 철도차량관리와 관련해 고속철도 차량에만 적용하는 철도안전 관련 국제표준(IEC62278)을 일반·도시·광역철도 차량에도 의무적으로 확대 적용해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