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보수당 10년간 188억 파운드 규제절감, 美 트럼프 규제완화 행정명령규제 하나 만들면 세개까지 철폐 '원인쓰리아웃' 법률로 정하는 선진국보수정당도 기업규제 찬성하는 韓…21대 국회 기업부담법 발의 40%↑
  • 국회가 기업을 옥죄고 경영권을 흔드는 이른바 '공정3법'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의회가 앞장서 규제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는 것으로 나타나 시대를 역행하는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 집권한 영국 보수당-자유민주당 연합은 기업 규제비용 감축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총선을 승리했다. 규제신설시 동등한 규제비용을 지닌 기존규제를 폐지해 기업의 규제비용을 감축해야 한다는 원인원아웃(one-in-one-out) 정책이 대표적이다.

    보수당은 이후 원인원아웃 제도를 원인투아웃(one-in-two-out), 원인쓰리아웃(one-in-three-out)까지 확대했다. 규제 하나를 신설하면 최대 3개까지 철폐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한국은 2016년부터 원인원아웃 수준의 규제비용관리제를 국무총리 훈령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띈 법률이 아니어서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영국 의회는 이같은 원칙을 내세우고 의회임기중 감축할 기업규제비용 목표를 정부가 발표하고 이를 의회에 보고토록 하는 기업영향목표(Business Impact Target, BIT)를 법률로 정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BIT로 감축한 규제비용은 188억 파운드(약 28조원)으로 연평균 20억 파운드(약 3조원) 상당에 달한다. 기간별로 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이어진 의회임기중 감축한 기업규제 비용은 총 100억 파운드(약 15조원)에 달했고, 2015년 새로 출범한 의회에서는 2017년까지 2년간 66억 파운드(약 10조원)을 절감했다. 조기총선으로 2017년 시작한 의회는 5년 임기 중 90억 파운드(약 13조6000억원)를 규제절감 목표로 정하고 지난 2년간 22억 파운드(약 3조3000억원)을 절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현상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경제 충격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경제회복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라"는 규제완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응해 일시 중지한 수백개 규제를 가급적 영구 중지하라"고 연방정부에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에도 규제완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 규제 하나를 신설하면 기존 규제 둘을 철폐하는 '원인투아웃'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영미권 국가들이 앞다퉈 추진한 기업규제 완화는 기업들의 인식도 바꾸고 있다. 영국 정부의 기업대상 인식조사에 따르면 규제가 기업성공의 걸림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009년 조사에서 62%에 달했으나 점차 감소하여 2018년 조사에서는 40%로 낮아졌다.
  • ▲ 규제신설로 인한 기업 규제비용 현황(억 파운드)ⓒ전경련
    ▲ 규제신설로 인한 기업 규제비용 현황(억 파운드)ⓒ전경련
    6월 출범 21대 국회 석달간 기업규제법안 284건 제출…역주행 하는 한국

    대한상공회의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출범한 21대 국회가 석달간 발의한 기업에 부담되는 법안은 284건에 이른다. 20대 국회에 비해 40% 가량이 증가한 수치로, 사흘에 한번꼴로 기업규제법안을 쏟아낸 셈이다.

    대표적인 기업규제로 꼽히는 것이 공정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으로 일컬어지는 법안들이다.

    정부와 여당이 주도한 법안이지만, 야당인 국민의힘도 원론적인 찬성 입장인 것으로 나타나 우려를 낳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 20일 언론과의 통화에서 "과거에 우리도 하려고 했던 것이므로 일단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시정하면 된다"고 밝혔다.

    ▲다중대표소송제도 신설 ▲감사위원 분리선임 ▲3% 의결권 제한규정 개편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은 기업들의 경영부담을 한층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다중대표소송제도는 모(母)회사의 주주가 1%의 지분만 가지고도 자회사 이사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상장의 경우 0.01%만 보유해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자회사에 출자도 하지 않은 모회사의 주주에 의해 자회사가 소송에 휘말리는 등 소송 리스크가 커질뿐 아니라 자회사 주주 권리도 상대적으로 침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다중대표소송제 신설시 상장사의 소송 리스크는 3.9배 상승할 것으로 경제계는 내다보고 있다.

    가장 논란이 큰 3% 의결권 제한규정 개편내용은 감사위원 선임시 최대주주가 특수관계인과 합해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을 무기로 헤지펀드들이 감사위원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선임하는 등 경영권이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혁신토론회.ⓒ자료사진
    ▲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혁신토론회.ⓒ자료사진
    반면 국민의힘은 전면적인 반대 입장은 아니지만, 기업에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대응수단을 쥐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법 개정안의 경우 차등의결권과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을 도입하는 추경호 의원의 법안이 대표적이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적대적 M&A에 방어하는 등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으로 집중투표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제도다. 미국·프랑스·일본 등 선진국에선 이미 시행되고 있다.

    또 신주인수선택원은 해외 투기자본이 적대적 M&A 등 경영권 침해를 시도하면 신주 발행 때 기존 주주에겐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이 헐값으로 발행돼 기업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있어 포이즌필(Poison Pill, 독약처방)이라고 불린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규제개혁, 실질적 성과를 창출하는 규제개혁을 위해 우리도 의회가 앞장서서 구체적 목표를 정해 규제개혁을 추진토록 법률로 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