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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이재용 증거 넘친다던 검찰, 독선과 아집만 가득

이재용 파기심, 특검 발목에 9개월 이상 지연검찰 시간 끌기 이례적… 재판 장기화 헌법상 보장된 신속한 재판 받을 권리 훼손내년 1월 '경영권 승계 의혹' 재판 잃어버린 10년 우려

입력 2020-11-26 10:19 | 수정 2020-11-26 10:41
"피고인 측에서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하는 경우는 다반사지만 검찰이 시간을 질질 끄는 일은 이례적입니다. 한 기업인에 대해 4년간이나 재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정상적인지 의문입니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가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 화두에 오르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보인 반응이다. 이미 결론이 났어도 모자랄 판에 1분 1초가 생명인 기업을 옥죄고 있으니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부터 법원을 드나들며 국정농단 사건을 취재한 기자 입장에서는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통상 파기심은 2~3개월 안에 끝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난 1월 특검의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9개월 이상 지연됐다. 

재판부가 삼성에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권고한 것을 두고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로 삼고 있어 재판장을 바꿔달라는 논리였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특검이 주장하는 사유만으로 불공평한 재판을 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특검이 제기한 기피 신청을 기각했다. 파기심 재판부의 공정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검의 이런 태도는 재판 재개 이후에도 이어졌다. 지난 23일 열린 공판에서는 서증조사에 3시간 가까이 할애했는데 사실상 사건을 처음부터 되짚는 수준에 불과했다.

새로운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채 이 부회장이 승마지원 및 동계 영재스포츠센터 지원 등이 대가를 기대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공여한 뇌물이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한 발 더 나아가 "삼성은 국내 1위 재벌그룹 넘어 초일류 대기업으로 성장, 최고 정치 권력자와 최고 경제 권력자로서의 대등한 지위를 갖게 됐다"는 옹색한 이유도 들었다.  

그러나 이는 1심과 2심을 거쳐 모두 해명된 부분이다. 실제로 1심과 2심은 물론 대법원 상고심도 뇌물의 성격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특히 파기전 상고심은 '포괄적 묵시적 청탁'의 법리 구성을 인정하면서도, 뇌물의 성격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특검은 또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재판부에 준법감시위를 평가할 시간도 더 요구하며 독선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특검이 고의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쉽게 떨치기 힘든 배경이다.

이런 특검의 무소불위 권력에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의 정당한 권리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국정농단 수사 시기부터 피고인 또는 피의자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조차 없는 '표적수사'로 비춰진지 오래다.  

또한 헌법상 보장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역시 침해받고 있다. 헌법 제27조 3항에 따르면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피고인이 무죄라면 사회에 빠르게 복귀하고 국민의 신뢰 등 피고인의 이익 보호를 위해서다.  

문제는 '국정농단' 사건이 끊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내년 1월부터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한 재판까지 진행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삼성이 짊어질 수 밖에 없다.

국정농단 재판이 4년여간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삼성은 10년간 사법리스크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은 이미 검찰에 10차례나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구속영장 실질심사만 3번 받는 등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특검 기소에 따른 재판은 무려 80차례 열렸고, 이 가운데 이 부회장이 직접 출석한 재판은 1심에서만 53차례를 포함해 총 70여차례에 달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문제 등과 관련한 수사에서도 50여차례의 압수수색과 430여차례의 임직원 소환조사가 진행됐다.

삼성은 이미 지난 4년간 이어진 리스크로 인해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인재영입 등의 미래사업을 그리는데 제한이 많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에서도 삼성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래 먹거리로 내건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시장 강자 TSMC와 기술 선점을 두고 초접점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시점에서 재판 이슈로 어려움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지난 공판에서 "부친의 와병으로 경영을 맡은 게 6년 절반 가량 됐는데 그중 4년이 수사와 재판"이라며 "검토가 끝난 판결문인데 이걸 2시간이나 설명하겠다는 게 이해가 안 가는데 소송 지연 외에는 목적이 없다고 보인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특검은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을 기소하면서 이들에 대한 혐의 입증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증거는 없고 망신주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건 아닌지 의문이다. 피고인에 대한 유죄 입증을 위해 특검에 필요한 것은 이런 저런 핑계로 재판을 시연시키는 것이 아닌 무죄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해도 좋을 만큼 확실한 증명이다.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검찰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절차적 정당성도 갖추지 않는다면 독선과 아집으로 비춰질 뿐이다. 

조재범 기자 jbcho@newdaily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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