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관용차 국산 전기차로 대체"…'신보호주의' 재연 우려 커져입법조사처 "美, 해외진출기업 복귀 압박…징벌적과세 카드까지 꺼내"韓 유턴기업 연평균 11.3개…전문가 "법인세율 인하 등 기업독려 정책 필요"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바이 아메리칸'(미국제품 구매) 선언으로 주요 교역국의 셈법이 복잡해진 가운데 코로나19(우한 폐렴) 이후 달라진 생산체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도 리쇼어링(생산시설 국내 이전)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제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기업 옥죄기 일변도 정책이 리쇼어링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의견이다.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 시각) 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연방정부가 공공업무를 위해 기간시설을 갖추거나 장비가 필요할 때 자국 제품을 우선 구매한다는 내용이다. 미 연방정부는 한해 6000억 달러(661조원쯤)의 상품·서비스를 구매·이용한다. 이번 행정명령은 기존 규정의 예외 사유를 엄격히 규제하고 백악관이 제도 운용을 직접 감독한다는 게 핵심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공약대로 먼저 연방정부의 관용차를 모두 미국산 전기차로 바꾼다는 태도다.이번 조치는 미국 제조업계에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글로벌 통상 규범을 흔들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이후 새로운 다자주의 교역환경을 기대했던 통상교역국들은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노선을 분명히 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통상정책이 자국의 이익 보호쪽으로 기울면 통상 마찰이 거세질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바이든의 이번 조치는 예견됐던 일이라는 반응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미국 공화당이 자유무역, 민주당이 보호무역주의 성향인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반대로 했던 것"이라며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입장이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보다는)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미국을 우선시하는 기조는 일맥상통하지만,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 간 추진방식과 강도에서 차이가 드러날 거라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인 제재를 가하는 편이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과의 상호주의를 의식하며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보호주의를 펼칠 거라는 관측이다.
-
국회입법조사처는 26일 내놓은 '바이든 신행정부의 주요 정책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과 리쇼어링 강화를 바이드노믹스의 특징으로 꼽았다. 조사처는 "글로벌 생산체계 확장이 코로나19 이후 시스템의 위험으로 다가오면서 세계 각국이 공급선 자립화와 자국 내 산업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도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위해 미국으로 회귀하는 기업에는 혜택을 확대하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에 대해선 징벌적 세금을 부과한다는 정책을 공약했다"고 설명했다.조사처는 바이든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칸 정책 수단으로 먼저 미국 기업의 해외 자회사 수익에 대한 세율 인상을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해외 자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최저세율을 10.5%에서 21%로 올리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오프쇼어링(생산시설 국외 이전) 추징세도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이다.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를 미국 내에서 판매할 경우 해당 수익에 대해 10%의 징벌적 과세를 매기는 것이다. 연방정부 법인세(28%)까지 더하면 최대 30.8%의 세금을 매길 수 있다.반면 미국 유턴기업에는 세액공제 당근을 준다. 폐쇄된 생산설비를 활성화해 미국 내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10%의 세액을 공제해주는 식이다. 조사처는 "바이든 행정부도 대(對)중국 견제 강화와 의약품 등 필수산업의 공급망 구축은 트럼프 행정부와 같다"면서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기업의 해외 이전을 방치하고 일자리 창출 요구 없이 법인세를 내렸다고 비판했다. 징벌적 과세 등을 통해 더 강력한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조사처는 "자국제품 우선구매 등의 정책변화는 미국뿐 아니라 독일, 일본 등 세계 주요국의 공통된 사항"이라며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사슬의 위험이 커지면서 리쇼어링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추세"라고 부연했다. 조사처는 "우리나라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교역과 인력 소통이 어려워지고 해외공장이 셧다운 되는 등 해외 진출기업의 취약점이 부각되고 있다"면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 강화 등을 고려할 때 안정적인 국내 공급사슬 구축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리쇼어링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설명으로는 해외로 나간 한국기업 중 5.6%만 국내로 복귀해도 새 일자리 13만개가 창출된다. 국내 생산 및 부가가치유발액은 53조1000억원에 달한다.
-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3년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법이 만들어진 이후 2014~2019년 복귀한 유턴기업은 총 68개다. 연평균 11.3개다. 미국은 2014~2018년 연평균 유턴기업이 482개로 집계됐다. 전경련이 지난해 7월 배포한 '미국·유럽연합(EU)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및 리쇼어링 현황 분석' 자료를 보면 미국의 리쇼어링 지수는 2018년 마이너스(-)32에서 2019년 플러스(+)98로 급상승했다. 리쇼어링 지수는 미국 컨설팅업체 AT커니가 개발한 지표다. 미국 제조업 총산출 중 중국·베트남·필리핀 등 아시아 14개 역외생산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제조업 품목의 비율을 말한다. 플러스는 리쇼어링 확대, 마이너스는 역외생산 의존도 증가를 뜻한다. 전경련이 같은 방식으로 계산한 한국의 리쇼어링 지수는 2018년 -11, 2019년 -37이다.경제전문가들은 리쇼어링을 확대하려면 기업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기업이 해외로 안 떠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외국기업도 유치할 수 있다"면서 "법인세 인상 등 세금 이슈, 경영진이 형사법에 쉽게 노출되는 문제, 각종 기업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리쇼어링 확대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산업부의 해외진출기업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해외진출기업 1028개 중 93.6%인 962개는 '국내 복귀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국내 이전을 검토하지 않은 사유로는 생산비용 상승(66.7%), 노동환경(58.3%), 각종 규제(33.3%), 구인난(25%) 등을 꼽았다.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의 규제 일변도 기업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지금의 기업활동을 옥죄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저가 생산기지를 찾는 국내기업들이 우리나라로 유턴할지, (애플처럼) 베트남 같은 다른 나라로 갈지 유불리를 따진다면 답은 자명하다"고 꼬집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의 해외 이전이나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법인세율 인하 등 과감한 기업투자 독려정책을 펼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