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후 재시공' 뒤엎고 전면 철거 발표잇단 시공권 해지-새정부 압박 등 위기의식70개월-2000억 소요…협의과정 장기화 우려도
  • ▲ 4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용산 사옥에서 열린 광주 '화정 아이파크' 사고수습 관련 추가대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몽규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 4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용산 사옥에서 열린 광주 '화정 아이파크' 사고수습 관련 추가대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몽규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4개월 만에 승부수를 던졌다. 8개동 전부를 모두 철거하고 재시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고 이후 시공 계약 해지가 잇따르고 있는 데다 여전히 '화정 아이파크'와 관련된 행정처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번 결단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HDC현대산업개발이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4일 정몽규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 용산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주예정자의 요구이신 화정동의 8개동 모두를 철거하고 새로 아이파크를 짓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2월 실종자 구조작업을 끝난 이후 피해보상을 위한 대화를 이어왔지만, 입주 예정 고객의 불안감이 커져 왔고 회사 또한 불확실성이 지속하며 기업 가치와 회사에 대한 신뢰 또한 회복이 더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희는 고객에게 안전과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회사의 존립 가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조금이라도 안전에 관한 신뢰가 없어지는 일이 있다면 회사에 어떠한 손해가 있더라도 고객과의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이파크를 사랑하는 모든 고객과 국민 여러분의 불안감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전날 밤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실무진들도 당일 오전에서야 해당 일정을 전해 들었다는 후문이다. 정 회장은 전날 HDC현대산업개발 경영진과 만남을 갖고 최종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HDC현대산업개발은 무너진 201동을 비롯해 나머지 7개동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을 거친 뒤 재시공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을 뒤엎고 전면 철거를 결정한 데에는 '화정 아이파크' 논란이 계속 이어지면 신뢰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대규모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논란의 불씨를 서둘러 제거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화정 아이파크' 입주예정자들은 붕괴사고가 발생한 201동과 동일한 자재와 공법으로 지어지는 나머지 7개동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다며 철거 후 재시공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붕괴사고 이후 기존 수주계약을 체결한 사업장에서도 보이콧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광주 운암주공3 △경기 광명11구역 △부산 서금사A △경기 뉴타운맨션삼호 △경기 곤지암역세권 △대전 도안 아이파크시티 2차 등에서 HDC현대산업개발과 계약을 해지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3구역,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 울산 남구 B-07 등 가까스로 시공권 방어에 성공한 곳도 있지만, 시공사 교체 요구는 이어지고 있다.
  • ▲ '화정 아이파크' 현장. ⓒ연합뉴스
    ▲ '화정 아이파크' 현장. ⓒ연합뉴스
    게다가 아직 '화정 아이파크'에 대한 행정처분이 내려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하반기 중 관련 행정처분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HDC현대산업개발에 건설산업기본법 83조의 최고 수위인 등록말소 처분을 내려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한 바 있다.

    차기 정부 역시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HDC현대산업개발을 연일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달 19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을 찾아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했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같은 달 29일 현장을 찾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가해 기업은 망해야 하고, 공무원들은 감옥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청문회에서도 해당 발언을 유지하겠느냐는 질문에 "그 방향으로 강화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HDC현대산업개발이 광주 학동 붕괴사고와 관련, 영업정지 처분 절반을 4억원 규모의 과징금으로 대체한 것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기업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유권 해석 법령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이날 전면 재시공에 따른 철거·시공비와 입주 지연으로 인한 주민 지체보상금 등 보상비를 포함해 총 3700억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HDC현대산업개발은 '화정 아이파크' 사고 비용으로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 약 1700억원을 충당금으로 선반영했으며 올해 이후 추가로 2000억원의 비용을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입주예정자들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관련 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앞으로 6년 가까이 입주가 지연되는 데 따른 피해액 보상 과정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을 거쳐 준공하는 데까지 70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계약자들이 입주 지연에 따른 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계약 해지도 해줄 방침이다. 입주예정자들은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과 표준분양계약서 등을 근거로 입주 지연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분양계약 유지를 원할 경우 분양계약서상 HDC현대산업개발로부터 입주 지연 기간만큼 연 6.48%의 지체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재 '화정 아이파크' 계약자들은 계약금 10%와 6회차 중 4회차까지 중도금 등 분양대금의 총 50%를 납부했다.

    분양가 5억4500만원짜리 201동 전용 84㎡의 계약자가 현재까지 중도금 4회차를 납부했다면 2억7250만원에 대해 연 6.48%의 금리로 입주 지연 기간 만큼 지체보상금을 받는다. 입주가 6년가량 지연되면 계약자당 지체보상금만 1억600만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계약해지 요구도 가능하다. 사업시행자의 귀책 사유로 입주가 예정일보다 3개월 이상 지연되면 입주예정자들이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HDC현대산업개발로부터 전체 분양가의 10%에 해당하는 위약금과 함께 기납부한 분양대금에 대해 연 1.99%의 금리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외에 민사상의 물질적·정신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해 HDC현대산업개발의 피해 보상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가 아닌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은 기업으로서는 대단히 큰 결단이다.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며 "당장 비용적인 손익을 따지면 비합리적일 수 있지만,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가장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