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모든 조치할 것으로 생각"이창용 "지금은 적절치 않다"유동성 공급 엇박자… 채권시장 회복 오래걸릴 듯
-
정부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통화당국이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금융권이 50조원 규모의 긴급 안정대책을 내놨지만,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은 직접적인 개입을 꺼리는 모습이다.25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전날 단행된 금융권 유동성 공급으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거래일보다 0.19%p 하락한 4.305%를 기록했다. 채권시장안정펀드를 가동해 매입에 착수하면서 채권가격이 상승한 것이다.AA- 등급 회사채 3년물 금리도 0.144%p 하락했지만, 국고채 하락폭을 따라잡진 못했다. 국고채와 회사채 사이 금리차를 가리키는 신용 스프레드는 오히려 0.46% 벌어진 1.287%를 기록했다. 채권시장은 다소 안정됐지만, 회사채 위험성은 커진 셈이다.실제로 이날 발행 시도한 한국가스공사 공사채 2년물은 투자자를 찾지 못해 유찰됐다. 중장기채인 5년물만 가까스로 발행이 성사됐다. AAA 신용등급 공사채임에도 시장은 단기 투자물 변동성을 높게 본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AA+ 등급 인천도시공사 그린본드 채권도 유찰을 피하지 못했다.유동성 공급의 온기는 회사채 시장에 더 시급해 보인다. 앞서 6%대 금리와 월이자지급이라는 투자매력을 내세운 코리안리재보험은 1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 수요예측에서 250억원을 모집하는데 그쳤다. 지난 19일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한 LG유플러스도 수요예측에서 500억원이 미매각됐다.투자금융 업계 관계자는 "국고채만 강세를 보일 뿐 신용물은 여전히 약한 상태"라며 "실질적인 유동성 공급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상황이 녹록치 않자 금융당국은 한국은행의 시장 개입을 기대하는 눈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채권시장안정펀드도 재원이 금융기관이어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한국은행이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재가동을 포함해 모든 조치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SPV는 저신용등급을 포함한 회사채 및 기업어음을 매입해 한국은행이 선순위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다.하지만 이창용 한은 총재는 같은 자리에서 "SPV는 추후 필요하면 논의할 수 있지만 지금은 적절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어 "대책은 타이밍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너무 과도한 약을 쓸 수 없다"며 "CP(회사채)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은행 파이낸싱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한은은 공사채와 은행채를 적격담보증권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면서도 신규 유동성을 공급하는 SPV, 금융안정특별대출 등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에 나설 경우 글로벌 긴축 기조에서 이탈한다는 시그널로 해석돼 투자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로 보인다.시장에서는 금융당국과 통화당국의 엇박자가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시중은행 한 채권운용역은 "정부는 돈을 풀겠다고 하고 한은은 물가부터 잡겠다 하면 투자자들은 헷갈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당분간 자본시장 변동성이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