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적 쿠팡 김범수 의장이 촉발… 美상무부·산업부·외교부 '반대'롯데그룹 신유열 상무 日국적 등 외국국적 총수일가 2·3세 10여명공정위 "산업부, 명시적 반대 입장 아냐… 동의없으면 추진 못해"
  • ▲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26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마치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
    ▲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26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마치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가 외국인 동일인(총수) 지정을 재추진한다고 밝혔지만, 통상마찰을 우려하는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들의 난색으로 최종 시행까지는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26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올해 주요 업무추진계획을 보고하며 외국인 동일인 지정을 재추진하겠다고 했다.

    외국인 동일인 지정은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쿠팡의 김범수 의장이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 불거졌다. 공정위는 매년 자산총액 5조 원이 넘는 기업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각종 공시의무를 부여한다. 이 때 해당 기업을 지배하는 자를 동일인으로 지정한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본인은 물론 가족 등 관련자에 대한 각종 자료제출이 의무화된다. 이를 위반할 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동일인 지정 제도의 핵심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막는 것이다.

    그동안 외국 국적의 총수가 동일인으로 지정된 적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21년 공정위가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쿠팡에 대해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에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제도 개선 작업에 착수했으며 연구용역을 통해 동일인의 정의와 요건 등에 대해 명확한 범위를 설정했다. 지난해에는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토록 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미국 상무부가 한·미 정상회담 전에 열린 실무회의에서 외국인 동일인 지정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통상마찰 등을 우려한 산업부와 외교부 등이 반대에 나서면서 공정위는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공정위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산업부와 외교부가 반대 입장을 보인 것이 아니라,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관계부처 간 공감대를 형성한 후 재추진할 것이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산업부 등의 반대에 부닥치자 공정위가 외국인 동일인 지정을 아예 포기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날 업무보고 내용에 외국인 동일인 지정 재추진이 포함되면서 앞으로 추이가 주목된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총수일가의) 2세, 3세가 외국인이거나 이중국적자인 경우가 꽤 있다"며 "언젠간 동일인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외국국적의 동일인 2세, 3세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인 동일인 지정기준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인 동일인 지정 문제를 손놓고 있다가는 추후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외국인 동일인 지정 가능성이 있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이 10여개나 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쿠팡의 김 의장이다. 롯데그룹도 가능성이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상무는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다.
  • ▲ 쿠팡 김범석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 쿠팡 김범석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다만 공정위는 산업부가 동의했다고 말하긴 이르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외국인 동일인 지정에 대한 의지는 있으되, 시행령 개정안 통과까지는 여러 암초가 있단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윤 부위원장은 "아직 산업부가 공정위가 제시한 안에 대해 동의했다고까지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산업부가 명시적으로 반대한다는 의견을 준 것도 아니다"라며 "공정위가 추진하는 내용이 국제규범이라든지 국제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에 관련된 규범에 상충되거나 위배되지 않도록 추진해 달라는 것이 산업부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정위가 제시하는 안에 따라 산업부의 의견이 달라질 수 있어 계속 협의해 나가야 할 사안으로 판단한다"며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므로) 산업부 동의가 없으면 더는 진행될 수가 없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