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까지 동원… 투자 '골든타임' 사수삼성디스플레이서 20조… 운영 재원 사용 공시美 테일러·평택 EUV 투자, 감산없는 생산계획 추진 자금 마련
  •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클린룸 전경 ⓒ삼성전자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클린룸 전경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 혹한기를 버텨내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0조 원을 빌려 올해 계획했던 투자와 생산 계획을 차질없이 이어가겠다는 뚝심을 다시 한번 내비쳤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계열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 원을 차입한다.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의결하고 이날 계약을 체결한다. 차입기간은 계약일 다음날부터 오는 2025년 8월 16일까지 2년 6개월이다. 이자율은 연 4.6%로 원금은 만기에 일시상환 하는 형태다.

    삼성전자는 이 자금을 운영용으로 쓴다고 밝혔다. 그동안 무차입 경영 기조를 이어왔던 삼성전자가 자회사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이처럼 대규모 금액을 빌려 운영자금으로 쓴 적이 없었던 탓에 반도체업계와 금융투자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차입처인 삼성디스플레이에게도 20조 원은 꽤나 규모가 큰 자금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말 기준 193조 1937억 원 규모의 자기자본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번에 삼성전자에 대여해준 20조 원은 자기자본의 10%가 넘는다.

    그만큼 형님인 삼성전자가 처한 현 상황을 자회사가 나서 도와야 할 필요성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고꾸라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업황이 올해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삼성전자가 계열사 자금까지 동원해서라도 현금 비축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번 차입은 삼성전자가 향후 2년 가량동안 기존 계획과 같은 투자 규모와 생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내는 대목으로도 볼 수 있다. 업황 불황으로 이미 경쟁업체들은 기존 생산 계획이나 투자 규모를 줄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표한 가운데도 삼성만은 호황기와 다를 바 없는 투자와 생산 전략으로 맞선다는 신념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삼성전자는 올해 설비투자와 인프라 투자 규모가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실적발표에서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달 31일 열린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실적발표에 이은 컨퍼런스콜에서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투자를 지속해 올해 설비투자 규모도 전년과 비슷할 것"이라며 "당장 반도체 시황 약세가 실적에 우호적이지 않지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연간 설비투자 규모는 53조 1000억 원이었다. 이 중 반도체(DS) 부문에서만 전체 투자의 90%를 차지하는 47조 9000억 원이 사용됐다. 삼성의 설명대로라면 올해도 50조 원 안팎의 자금이 설비투자금으로 쓰이게 되는데, 지난해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으로 삼성의 계획 대비 현금 곳간이 비어버리게 되면서 과감하게 계열사를 통해 내부 조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그 간의 무차입 경영기조에서 잠시 벗어났을 정도로 올해를 기점으로 향후 2~3년 간은 미래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투자 골든타임'이라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미 미국이 자국 반도체 생산체제를 육성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풀어 움직이기 시작했고 대만과 일본도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 적극 뛰어들어 셈법을 구상하고 있다. 삼성과 경쟁하는 TSMC나 인텔 등도 이 같은 흐름에 발 맞춰 향후 몇 년간 수백조 원대의 투자를 예고하고 속속 실행에 옮기고 있어 조금이라도 여기서 뒷쳐질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은 현재 미국 테일러 공장의 인프라 투자와 평택 캠퍼스에 EUV(극자외선) 생산 공정 확대, 3나노미터(nm) 이하 첨단 파운드리 공정 개발 등을 추진하면서 투자금이 지속적으로 대거 필요한 상황이다. 치열한 투자 경쟁 속에서 이번에 삼성이 차입까지 불사한 의지를 나타낸 가운데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 추진에도 업계의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