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추진 '구일섬' 단지 속앓이…이전무산시 사업성 급감차량기지에 막혀 800m 떨어진 대학병원까지 도보 35분 소요광명시 격렬반대…정치인 무지성공약 지역갈등 초래 지적도
  • ▲ 구로차량기지 입구. 사진=박정환 기자
    ▲ 구로차량기지 입구. 사진=박정환 기자
    서울 구로차량기지 이전 문제를 두고 이해관계자간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차량기지 이전을 추진중인 가운데 예정지역인 광명시가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광명시는 차량기지 이전 무산을 목표로 지역구 국회의원, 경기도의회 등과 공동대응전선을 구축, 반대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주민간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광명시 주민들은 연일 집회를 열며 사업철회를 외치고 있는 반면 구로구 주민들은 광명시민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광명시 반대로 차량기지 이전이 무산될 경우 최근 탄력이 붙은 구로 재개발·재건축사업이 '반쪽짜리' 효과에 그칠 수 있어 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23일 직접 둘러본 구로역과 구로차량기지 일대는 지역발전 시계가 20여년전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구로역 북쪽으로는 저층 공업지대가 밀집해 있었고 역 남쪽으로는 2000년대 이전에 입주한 소규모 노후아파트와 저층주거지가 즐비했다.

    최근 몇년간 주목할만한 재건축·재개발이나 개발사업 등이 없어 시설이나 건물이 대체로 노후해 1970~1980년대 낙후된 공업지역 이미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 ▲ 구로주공1차아파트 단지. 사진=박정환 기자
    ▲ 구로주공1차아파트 단지. 사진=박정환 기자
    철도는 구로동일대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로 꼽힌다. 구로역에서 구일역과 가산디지털단지로 각각 갈라지는 지상철도노선으로 인해 지역간 단절감이 크고 주변상권도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구로1동은 지상철로와 구로차량기지, 안양천으로 3면이 둘러싸인 탓에 교통이 불편해 '구일섬'이라는 웃지못할 별명까지 붙었다.

    '구일섬'은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도로가 남부순환로 하나뿐이라 출퇴근시간대 교통체증이 상상을 초월한다. 도보이용도 쉽지 않다. 철도 건너편으로 지나갈 수 있는 지하보도가 북쪽에 한곳, 동쪽에 한곳 뿐이라서 어디를 가더라도 동선이 꼬이기 마련이다.

    예컨대 지역중심에 위치한 구로주공1차아파트와 고려대 구로병원까지 직선거리는 800m에 불과하지만 중간에 구로차량기지가 위치해 있어 남쪽 지하보도를 통해 크게 우회해야 한다. 단지에서 병원까지 도보로 이동해보니 800m를 가는데 약 35분이나 소요됐다. 마을버스를 타도 빨라야 20분이다.

    지하철 경우 구로역보다는 1호선 구일역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구로주공1차에서 구일역까지 도보로 18~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반면 구로역 경우 북쪽 지하보도를 통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40분 가까이 걸렸다.

    구일섬내 단지들은 교통과 접근성 문제만 해결된다면 실거주로 나쁘지 않은 입지다.

    2100가구 규모 대단지인 구로구 구로동 '주공1·2차아파트'를 포함해 총 6000가구가 몰려 있어 인프라와 상권 공유가 가능하고 정비사업추진시 인근 단지간 연계로 수익성을 높일 수 있어 대형건설사 참여를 유도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또한 구일초·중·고교가 도보 최대 10분내 거리에 있고 통학로가 아파트단지내 위치해 비교적 안전한 등·하교가 가능하다. 서쪽으로는 안양천과 생태공원 등 녹지공간이 인접해 운동이나 여가생활을 즐기기에 수월한 편이다.
  • ▲ 현대연예인아파트에 걸린 예비안전진단 통과 축하 현수막. 사진=박정환 기자
    ▲ 현대연예인아파트에 걸린 예비안전진단 통과 축하 현수막. 사진=박정환 기자
    다만 차량기지와 철도에 인접한 단지는 소음과 먼지 등 오염물질 노출문제를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10~15분 간격으로 비행기 소음이 들리는 것도 단점중 하나다.

    현재 '구일섬' 등 구로동 단지들 사이에선 재건축 붐이 일고 있다.

    '구로주공1‧2단지'는 이미 2018년 재건축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해 정비계획안을 수립중이며 인근에 위치한 구로동 '현대연예인아파트(735가구)'도 2021년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다. 지난해에는 같은지역 '현대상선아파트(290가구)'가 예비안전진단 벽을 넘었다.

    단지 자체 잠재력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구로주공1차' 경우 용적률 153%, 건폐율 11%로 사업성이 나쁘지 않은데다 준공업지역에 위치해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적용 받을 수 있다.

    주변 개발호재도 예정돼 있다. 구로구 구로동 '우성아파트'(344가구), 신도림동 '미성아파트'(824가구)가 재건축 안전진단을 모두 통과해 사업에 탄력이 붙었고 신도림293 재개발은 4월 사업시행인가를 앞두고 있다. 신도림293은 19만6648㎡ 규모 준공업지역으로 재개발을 통해 최고 42층, 2722가구 아파트가 들어선다.

    구일섬을 비롯한 구로동일대 재건축·재개발사업 '키'는 차량기지 이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토부와 서울시는 25만3224㎡에 달하는 차량기지를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차량기지 부지에는 주상복합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 ▲ 지상철도 건너편으로 이동할 수 있는 지하보도. 사진=박정환 기자
    ▲ 지상철도 건너편으로 이동할 수 있는 지하보도. 사진=박정환 기자
    2005년 처음 차량기지 이전이 논의됐지만 광명시 반대 등으로 타당성조사가 2번이나 무산됐다. 2020년 11월 3번째 타당성조사에 들어가 기획재정부 최종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르면 이달말, 늦어도 다음달에는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로동내 한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차량기지이전을 통해 신도림이나 가산디지털단지 방향으로 이동시간만 단축되면 주거환경과 부동산가치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광명시와 주민들은 차량기지 이전을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광명시민 1000여명이 광명시민체육관 운동장에 모여 구로차량기지 이전반대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인근 S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차량기지 이전은 20년 가까이 된 해묵은 사안으로 관련 이슈가 나올때마다 인근단지들 호가가 널뛰어왔다"며 "2021년 광명시흥 신규공공택지 지정 영향으로 차량기지 이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하루새 호가가 2000만~3000만원씩 뛰었고 당시 '구로주공1차' 경우 전용 73㎡ 매물이 1년전보다 2억원 오른 10억원에 키맞추기를 하는 등 주변시장이 들썩였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용 '구로주공1차' 호가는 직전 최고가보다 3억원 가까이 떨어진 7억원대 초반에 형성돼 있다.

    W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재건축을 하든 매매를 하든 결국 관건은 차량기지 이전"이라며 "최근 광명시민들이 연일 반대집회를 여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관련 문의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치인들의 무지성 공약이 지역사회 갈등과 부동산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로차량기지 이전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