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림 후보 사의 표명, 경영 공백 장기화조직개편, 임원인사 올스톱, 주가 하락 이어져이사회 물갈이 필요성 지적… "코드 인사 관행 벗어나야"
  • "주인 없는 회사에서 대표 없는 회사로..."

    윤경림 KT 차기 대표이사(CEO) 후보가 공식 내정된 지 보름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초유의 리더십 공백을 맞이하게 된 KT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전문가들은 차기 대표 선정에 거듭 실패하는 KT 이사회의 '이권 카르텔'을 해소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코드 인사'가 종식되지 않는 한 외풍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윤 후보는 KT 이사진의 만류에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버티면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현모 대표는 지난해 12월 연임 의사를 밝혔지만, 정치권과 국민연금은 소유분산 기업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문제 삼으며 반발했다. 이후 구 대표는 연임을 포기, KT 이사회는 경선을 통해 윤 후보를 차기 CEO 후보로 내정했다. 

    하지만 윤 후보에 대한 정치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 주무 상임위원들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윤 후보를 구 대표의 '아바타'라며 비판했다. 특히 지난 정권에 임명된 KT 사내외 이사진들의 '이익 카르텔' 논란도 불거졌다.

    윤 후보는 정치권과 국민연금의 지적에 별도의 TF를 운영,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이슈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배임 의혹 등이 터져 나오면서 결국 사실상 주총은 표대결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KT 지분은 지난해 말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 국민연금(10.12%), 현대차그룹(7.79%), 신한은행(5.48%) 등 순으로 구성돼 있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사실상 반대 기조를 내세우고 있어 2대주주인 현대차그룹과 3대주주인 신한은행 모두 따를 것이라는 해석이 다분했다.

    정치권의 압박에 부담을 느낀 윤 후보가 결국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문제는 KT 주총이 약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윤 후보가 사임하면서 경영 공백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KT는 지난해 12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차기 CEO 경선을 진행하면서 조직개편 및 임원인사가 올스톱된 상황이다.

    KT가 차기 대표 선임을 재추진할 경우 적어도 한 달 넘게 컨트롤타워 부재에 휩싸이게 된다. 구 대표가 한시적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구체적인 경영로드맵을 구상하기에는 어렵다. 이미 CEO 경선 장기화로 KT 내부 직원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KT 노조는 "지난해부터 이어온 대표 선임에 따른 혼란은 회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전망으로 이어져 기업가치를 크게 훼손했다"며 "내부적으로는 각종 사업추진·경영 일정이 지연돼 조합원들의 불안과 위기감이 증폭됐다"고 강조했다. 

    경영 불확실성에 따른 주가 하락도 이어지고 있다. 윤 후보 사의 표명 이후 KT의 주가는 장중 3만원 밑으로 떨어진 2만 9950원에 거래됐다. 10조원을 넘겼던 시가총액 역시 7조 8464억원으로 2조원 넘게 증발했다.

    윤 후보 선임에 지지를 보냈던 KT 소액주주들과 국내외 자문기관들도 허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 'KT 주주모임'의 경우 가입자 수가 1600명을 돌파했으며, 전자투표를 통해 371만 5000주(1.4%)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 'ISS'를 비롯해 ESG경영자문기관인 한국ESG평가원도 윤 후보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KT 이사회가 세 차례에 걸쳐 CEO 선임에 실패한 점을 주목한다. KT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구현모·윤경림), 사외이사 6명(김대유·유희열·김용헌·강충구·여은정·표현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내이사 2명이 교체되는 상황에서 사외이사 역시 물갈이를 통해 조직 쇄신을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KT 이사회는 2002년 민영화 이후 줄곧 정치권 출신이 장악하는 '코드 인사'가 관행이었다. 구 대표가 취임한 2020년 이후 KT 이사회는 낙하산 인사들로 채워졌다. 당시 8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3명(이강철·김대유·유희열)이 '친노·친문' 출신들로 구성된 것.

    윤 후보 역시 구 대표의 '아바타'로 불리며 문 정권 인사라는 타이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KT 이사진의 투명성을 강조한 것도 이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때문에 KT의 전면적인 쇄신을 위해서는 이사진을 교체하고,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ESG 업계 관계자는 "윤 후보 사퇴로 기존 이사회가 존재해야 할 명분이 없어졌다"며 "이사회를 비롯한 계열사 CEO들에 대한 전방위 물갈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KT 이사회는 구 대표가 후보에서 사퇴했을 때 정권 차기 후보는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했다"며 "CEO 후보 없이 주총을 하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31일 KT 주총에서는 대표이사 선임의 건은 의안에서 제외되게 된다. 의안에서 제외될 경우 KT는 해당 사항을 공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