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 겨냥 '장비 수출 규제'국제전 번진 '반도체 전쟁'… 공급망 교란 불가피"지정학적 리스크 심화"… 美中 사이서 韓 눈치만
  • ▲ 자료사진. ⓒ삼성전자
    ▲ 자료사진. ⓒ삼성전자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 전쟁이 국제전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일본이 중국을 겨냥해 반도체 장비 수출규제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도 심화될 전망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첨단 반도체의 생산에 필요한 식각·노광·세정 장비 등 23개 품목을 수출관리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미국, 한국, 대만 등 42개 우호국에 대해서는 포괄적 허가가 적용되지만, 중국을 포함한 그 외의 국가·지역에 대해서는 해당 장비를 수출할 때 경제산업상의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시행령 개정이 특정한 나라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며 군사 목적의 용도 변경을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반도체 통제에 보조를 맞춘 조치로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미국이 지난해 10월 중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 데 일본이 사실상 손발을 맞췄다"고 분석했다.

    앞서 미국은 중국에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 14㎚ 이하 로직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위 장비·기술을 미국 기업이 중국에 판매할 경우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등 우방 국가에게 반도체 동맹인 '칩4' 가입도 요구한 바 있다. 네덜란드도 지난달 ASML을 비롯한 자국 내 주요 기업이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시행 일자는 오는 9월 1일부터다.

    미국 우방 국가들의 대(對)중 반도체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국도 내달부터 통신·군사 장비용 등 반도체에 쓰이는 갈륨·게르마늄의 수출 통제를 시작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두 광물 세계 생산량의 80%가량을 차지한다.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은 중국의 엄중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겨냥한 조치를 도입하고 시행했다"며 "중국은 깊은 유감과 불만을 표시하고 이미 일본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지 글로벌타임스(GT)는 중국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선례를 맹목적으로 따른 것이라고 비난하며 일본 반도체 산업의 좌절을 부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으로 시작된 반도체 패권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대되면서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은 깊어만 갈 전망이다. 일방적인 규제로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을 교란시켜 산업 침체만 커진다는 우려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최근 홈페이지 성명을 통해 "행정부가 현재 및 잠재적인 (수출) 제한 조치가 ▲ 좁고 명확하게 규정됐는지 ▲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지 ▲ 동맹국과 완전히 조정되는지 등에 대해 평가하기 위해 업계 및 전문가와 광범위하게 협의할 때까지 추가적인 제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SIA는 인텔, IBM,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이 회원사로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중이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 충칭에 후공정 공장을 두고 있다. 다롄에는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공장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 우려는 사실"이라며 "다만 한국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등 정부 차원의 대중 규제는 딱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