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한수원·도공 발주 입찰서 담합… 공정위, 13억 과징금 부과"낙찰예정자 사전 협의한 형식적 입찰에서도 과정상 담합 있으면 제재"
  • ▲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한국씨티·제이피모간체이스은행의 통화스와프 입찰담합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가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발주자가 사전에 구두로 낙찰예정자를 정했더라도 이후 이뤄진 입찰 과정에서 다른 참여자를 들러리로 세워 투찰가격 등을 합의했다면 담합으로 제재할 수 있다는 취지다.

    13일 공정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31일 한국씨티·제이피모간체이스은행이 통화스와프 입찰 담합 제재가 부당하다며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공정위 패소 판결을 내렸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공정위는 지난 2020년 3월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도로공사 등이 실시한 총 4건의 통화스와프 계약(외화 부채를 원화 부채로 전환하는 금융계약) 입찰에서 담합한 4개 외국계 은행을 적발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3억2100만 원을 부과했다.

    씨티은행과 제이피모간체이스은행은 해당 처분에 불복해 같은 해 5월 서울고법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듬해 5월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공정위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 설명으로는 한수원은 사전에 구두로 씨티은행을 낙찰예정자로 협의한 뒤 홍콩상하이은행과 A은행에게 제안서 제출을 요청했다. 홍콩상하이은행은 씨티은행과의 합의에 따라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고, A은행은 높은 금리를 써서 냈다. 이에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한 씨티은행이 낙찰자로 선정됐다.

    도공은 낙찰예정자인 홍콩상하이은행에 타 은행 제안서 제출을 요청했다. 홍콩상하이은행의 요청에 따라 제이피모간체이스은행과 씨티은행은 높은 원화 고정금리를 제출해 결국 가장 낮은 금리를 써낸 홍콩상하이은행이 낙찰자로 선정됐다.

    애초 원심에서는 발주자인 한수원과 도공이 특정 은행과 통화스와프 거래를 하기로 구두로 합의했고 이를 실질적인 수의계약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입찰절차를 거쳤다는 증빙을 남기기 위해 낙찰예정자가 아닌 다른 은행으로부터 입찰제안서를 제출받는 등 마치 입찰이 있었던 것처럼 외형을 갖췄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경쟁입찰 형식만 갖췄을 뿐, 실질적으로는 수의계약이기 때문에 입찰 담합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통화스와프 입찰의 경우 내부 규정이나 실무 관행에 따라 발주자가 입찰을 거치게 돼 있는데, 씨티은행과 제이피모간체이스은행의 경우 형식적으로 입찰서류만 작성해 마치 입찰이 있었던 것처럼 조작한 사례와는 다른 경우라고 봤다. 경쟁입찰 자체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A은행이 낮은 금리를 제시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담합이 실제 있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은 실질적으로 단독입찰을 하면서 들러리를 내세워 마치 경쟁입찰을 한 것처럼 가장하거나, 발주자 측이 특정인과 공모해 특정인이 낙찰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예정가격을 알려주고 그 특정인은 나머지 입찰참가인과 담합해 입찰에 응한 경우와 유사하다"며 "발주자와 낙찰 은행과 체결된 수의계약은 당사자 사이에서만 구속력이 있고 그 이후에 진행된 입찰절차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고자 하는 공정거래법의 입법목적에 비춰 보면, 발주자가 행한 방식의 입찰 역시 규제할 필요가 있고 입찰 자체의 경쟁뿐만 아니라 입찰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경쟁도 함께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파기환송심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공정위 처분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