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 자인‧배임 이슈 얽혀 소극적은행, 금감원과 갈등의 골 깊어지나 징벌적 과징금 첫 부과 가능성 주목
  • ▲ 이복현 금감원장ⓒ뉴데일리
    ▲ 이복현 금감원장ⓒ뉴데일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증권사에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손실에 대한 선제적인 자율배상을 압박하고 나섰지만 은행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금감원의 조사‧검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확정되기도 전에 판매사가 선제적으로 배상할 경우 불완전판매를 시인하는 셈인 데다 업무상 배임 우려까지 있어서다. 

    엄청난 과징금을 낼 수 있다는 점도 금융사들을 움츠리게 한다. 지난 2021년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상 금융사들이 설명의무를 위반했을 경우 투자금액의 최대 50%까지 내야 하는데, 홍콩 ELS의 판매금액을 감안하면 최대 조 단위의 과징금을 낼 수도 있다.  

    ◇위축된 은행권, "자율배상안 현실적으로 불가능”

    정부나 정치권, 금융당국은 총선을 앞두고 ELS 관련 피해 배상 및 보상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5일 “불법과 합법을 떠나 금융권 자체적인 자율배상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최소 50%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은행들은 현실적으로 자율배상안을 내놓을 명분이 없다면서 금융당국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일반적인 금융권 배상 절차는 금감원 검사 완료→불완전판매 혐의 입증→제재 통보→배상기준안 마련→금융사‧소비자 분쟁조정 합의 순으로 진행된다. 분쟁조정에서 합의가 불발되면 금융사와 소비자는 민사 소송을 하게 된다. 

    금감원은 현재 주요 판매사에 대한 2차 현장검사에 돌입한 상태다. 판매과정에서 적합성 원칙 위반사례가 없는지 살펴 늦어도 2월 중 책임비율을 정할 계획이다. 

    금감원 검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먼저 자율배상을 할 경우 금융회사는 스스로 설명의무 등 불완전판매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 경우 투자자에게 배상금과 별도로 더 많은 과징금을 물어줘야 한다. 

    은행 관계자는 “자율배상을 할 경우 향후 ELS에 대한 법적 소송에서 은행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고, 거액의 과징금은 물론 분쟁조정과 징계에서도 불리할 수 있다”면서 “당국의 책임분담 가이드라인이 나오기 전 먼저 배상안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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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상안보다 과징금 폭탄…은행, 복잡한 셈법

    은행들의 ELS 불완전판매를 판단하는 핵심은 설명의무 위반 여부와 적합성 원칙이다. 

    먼저 설명의무 위반으로 확인되면 금융사는 소비자에 손해배상 뿐만 아니라 판매액의 최대 절반(50%)까지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금소법 19조에서는 이번 ELS 같은 투자성 상품의 경우 내용, 위험, 위험등급을 알리도록 명시했다. 같은 법 시행령에서 '알려야 할 위험등급'으로는 △기초자산의 변동성 △신용등급 △금융상품 구조의 복잡성 △최대 원금 손실 가능금액이 있다. 

    은행들은 금소법에 따라 ELS 판매 과정에서 모든 고객을 상대로 판매과정을 녹취했으며 최종 가입의사도 재확인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형식과 절차를 잘 지켰기 때문에 전체 가입자의 91.4%인 재투자자들이 "상품에 대해 잘 모르고 가입했다"는 말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게 은행의 입장이다.

    그러나 당국은 설명의무 과정에서 기초자산의 변동성 등 홍콩 H지수의 과거 손실률을 제대로 투자자에게 알렸는지 문제삼고 있다.  

    금소법 17조에 따른 적합성 원칙도 논쟁 사안이다. 

    적합성 원칙에 따라 금융사는 자체 파악한 투자자 특성(투자목적·재산상태·투자경험 등)에 적합하게 투자를 권유해야 하고, 부적합한 투자 권유를 하지 말아야 한다.  

    금감원은 검사에서 이 같은 적합성 위반에 해당하는 사례를 여럿 적발했다고 밝혔다. 

    노후 대비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는 은퇴자에게 ELS와 같은 고위험·고수익 파생금융상품이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주식형 펀드 등을 금융사가 권유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금소법 등 매뉴얼에 따라 여러 질문을 던져 투자자 성향을 분류해 상품에 가입시킨 만큼 적합성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과 은행의 시각 차이에 따라 배상안 범위와 과징금 수준이 결정되는 상황이라 은행들은 법무법인 등과 사례별로 법적 분쟁 가능성을 검토하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7일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H지수 기초 ELS 만기 도래 규모는 9733억원이다. 하지만 고객이 돌려받은 돈(상환액)은 4512억원으로 평균 손실률은 53.6%(5221억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