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발주해도 2028년 이후에나컨테이너 84→130척, 벌크 36→110척 차질 불가피선박가격도 천정부지… 선복량 확대 빨간불
  • ▲ 독일 함부르크항에 정박 중인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HMM 그단스크(Gdansk)호ⓒHMM
    ▲ 독일 함부르크항에 정박 중인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HMM 그단스크(Gdansk)호ⓒHMM
    정부가 국적 선사의 선복량을 대폭 늘리는 방침을 정하면서 해운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선복량이 늘어나면 경쟁력은 확보할 수 있지만, 해운산업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를대로 올라버린 선박가격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17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HMM은 지난해 말 기준 92만TEU 선복량을 2030년까지 150만TEU까지 늘릴 계획이다. 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를 말한다.

    해상운송은 규모의 경제 효과가 극대화되는 산업으로 최근에는 10000TEU 이상의 대형 컨테이너선을 선호한다. HMM이 지난해 인도받은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박이다.

    이번 계획이 실현되면 컨테이너선은 84척에서 130척으로, 벌크선은 36척에서 110척으로 늘어난다. 척수로만 따지면 120척에서 250척으로 두 배 이상 커지는 셈이다. HMM은 선대 확장과 함께 경쟁력 있는 선대 포트폴리오를 꾸려 국내외 전략화주를 기반으로 영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HMM의 선대 확대는 정부 방침에 발맞추기 위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부산 신항을 찾아 "5조5000억원 규모의 친환경 선박 금융을 국적 선사에 제공하고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국적 선사 선대를 총 200만TEU로 확충하겠다"고 했다.

    전세계 해운동맹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K-해운이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체력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한진해운 파산 이후 쪼그라들었던 과거와 지금의 해운산업은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HMM(현대상선)의 선복량은 고작 40만TEU에 그쳤다. 조선사들도 불황이 겹치며 선박을 건조하는 도크도 비어있던 상황이었다. 덕분에 정부가 조달한 자금이 조선사에 유입되고 이를 통해 HMM은 선복량을 두 배 이상 늘리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조선업과 해운업 모두 호황을 누리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국내 빅3 조선사는 모두 3년치 일감을 쟁여둔 상태다. 지금 발주를 넣는다 해도 2028년 이후 받아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박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가 집계한 지난달 신조선가지수는 183으로 16개월 연속 상승세다. 역대 최고치였던 2008년 9월 191.6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가 상승으로 조선소들이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집중 수주하고 있고, 도크를 많이 차지하는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은 꺼리는 분위기"라고 했다.

    중국 조선소를 찾는 방법도 쉽지 않은 카드다. 중국 신조선가지수도 지난해 이후 꾸준히 상승한데다 이미 수주받은 작업량은 국내 조선사보다 많다. 국가별 수주잔량을 보면 한국은 3861만CGT, 중국은 6223만CGT로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변용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조선업에 대한 불공정 관행 조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며 "K조선도 최근 상선보다 군함 건조에 관심을 보이는 등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서고 있어 배 구하는 일이 쉽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