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일부터 전국 대학병원 교수들 사직 행렬 빅5 병원 포함 전국 상급종합병원 '주 1회 셧다운'생사의 영역서 고통 받는 환자만 희생양 의대증원 타협 거부한 의료계 … 0 아니면 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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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성진 기자
    환자들은 마지막까지 살려달라며 의사들의 복귀를 호소했지만 결국 병원을 떠나기로 했다. 대한민국 의료는 붕괴가 시작됐다. 의대증원 정책을 반대하는 의사들은 타협 없이 원점 재검토를 고집했고 이제 출구전략도 사라졌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대학병원의 주 1회 셧다운이 확산하고 의대 교수도 사직도 이어진다. 이대로면 필수의료가 멈추는 최악의 의료공백 사태가 벌어진다.

    이날 오전 방재승 서울의대 비대위원장은 총회 결과를 발표하며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3월 25일부터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으며 개별 교수의 제출일로부터 30일이 지난 시점인 오는 25일부터 개인의 선택에 따라 사직을 실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두 달 이상 지속된 초장시간 근무로 인한 체력 저하 등 몸과 마음의 소모를 회복하기 위해 4월 30일 하루 동안 응급 중증 입원 환자 등을 제외한 진료 분야에서 전면적인 진료 중단을 시행한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소속 울산의대 교수들도 내달 3일부터 '신체적 한계' 탓에 일주일에 한번씩 자체 휴진을 하기로 했다. 이미 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교수진은 매주 금요일 휴진을 선언했고 원광대병원 교수들 역시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대위(전의비)는 전날 총회 후 "교수들의 사직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며 대학별 사정에 맞춰 우선 다음 주에 하루 휴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전의비에 참여하는 의대는 원광대, 울산대, 인제대, 서울대, 경상대, 한양대, 대구가톨릭대, 연세대, 부산대, 건국대, 제주대, 강원대, 계명대, 건양대, 이화여대, 고려대, 전남대, 을지대, 가톨릭대다. 

    특히 인력이 부족한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의 타격이 심각하다. 현재 투석을 받는 소아 환자는 전국에 100명 안팎인데 이 가운데 50~60%가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받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근무 중인 2명의 교수가 모두 사직을 결정했다. 

    전공의가 이탈한 지 두 달이 넘어 환자들의 치료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교수들 역시 병원을 떠나고 또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사실상 환자 사망을 방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미 환자들은 수면 아래에서 죽어 나갔다. 그간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다수의 사망 사례가 존재했다. 병원에서 진료 거부를 당해 죽음에 이르는 환자가 대다수였으나 이들은 정부가 운영 중인 피해신고·지원센터에서 실제 피해로 인정되지 않았다. 

    큰 범주에서 보면 의사인력 부재로 인한 주요 수술의 무기한 대기, 신규환자 입원 거부 등 역시 의료대란의 피해로 볼 수 있지만, 지난 두 달간 참고 버텨야 하는 과정으로만 치부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강대강 대치의 희생양이 된 환자들의 생명이 꺼져가니 의사들에게 돌아오라, 떠나지 말라고 읍소했으나 결국 이러한 사태로 이어졌다. 힘없는 약자는 죽어야만 하냐"고 분개했다. 

    그는 "주 1회 셧다운은 가뜩이나 열악한 현 상황에서 죽음을 모른척하겠다는 반인륜적 결정에 불과한 것"이라며 "정부는 즉각적인 의료현장을 점검을 통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이탈 후 부친 장례를 치른 한 보호자는 "의료대란 탓에 피해를 입었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은 상황인데 이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상상도 하기 어렵다"며 "의사들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 의료계 '자율 조정·특위'도 거부 … 출구전략 봉쇄 

    지난 19일 정부는 기존 2000명의 의대증원 규모를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도록 양보했다. 

    의대별 증원 인원 '50~100% 자율 조정'을 허용하면서 갈등 해결을 위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원점 재검토'라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강경모드로 전환됐다.

    '0명이 아니면 파국'은 현재 대한민국 의료계에 깔린 전제다. 이 과정에서 그 어떤 협상도 타협도 하지 않겠다는 기조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도 의료계 참여 없는 논의가 시작된다. 그간 정부는 의사단체 5곳과 대통령실·정부 관계자 4명이 참여하는 '5+4 의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으나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장상윤 사회수석은 "의협, 전공의, 의대생, 의대 교수 단체에 의료계-정부로만 구성된 협의체를 제안했는데도 의료계는 원점 재논의만 주장하며 1대1 대화도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의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이 직접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 또는 백지화를 선언하는 것이다. 이를 강제적으로 선택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환자의 목숨을 볼모로 잡은 것은 사실이다. 

    현 상황에서 정부 차원가 원점 재검토를 선언하는 것은 '국민 명령'으로 여겨왔던 의료개혁을 역행하는 처사다. 이미 수많은 환자들의 고통과 양보를 담보로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백기를 들어도 병원으로 돌아올 전공의들, 사직을 철회할 교수들, 셧다운을 멈출 병원들의 숫자는 미지수다. 이 수치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의사들이 마이웨이에 출구전략은 없다. 양보가 아니면 붕괴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