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선자 워크숍 보고 후 22대 국회 개원 즉시 당론 발의"역대 장관 "포퓰리즘일뿐 … 세계적 건전재정 회복 추세 역행"법 통과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위헌 다툼 등 장애물 수두룩국민여론도 냉담 … 경제학자들 "3高 국가·가계에 위기 초래"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 기간이던 지난 3월24일 서울 송파구의 한 전통시장을 찾아 '전 국민 25만원' 피켓을 든 같은 당 후보들과 유세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 기간이던 지난 3월24일 서울 송파구의 한 전통시장을 찾아 '전 국민 25만원' 피켓을 든 같은 당 후보들과 유세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해 제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처분적 법률' 형태로 속전속결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가운데 역대 경제사령탑이 "당장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멈추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악화일로인 국가 재정 문제는 외면한 채 퍼주기 법안 통과에만 골몰하는 포퓰리즘일 뿐이라며, 전 세계적인 재정건전성 회복 경로에 역행하는 행태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뉴데일리와 전화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시도하는 전 국민 25만 원의 민생지원금 지급 법안에 대해 "문제가 많고,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전 장관은 "대량 실업이나 전쟁, 코로나처럼 역병이 돌아 국민이 어려운 상황도 아니고, 1분기 성장률이 높게 나온 상황에서 (막대한) 돈이 풀리면 물가를 더 부추길 것"이라며 "고금리 정책 기조와도 엇박자가 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세계가 재정 건전성을 복원하기 위한 정상화 경로로 가고 있는데 다시 흘러간 옛날 카드를 꺼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도 이날 전화 인터뷰에서 "예산 집행권한은 행정부 소관인데, 국회에서 예산 법안 만들어서 집행까지 하면 행정부-입법부 구분이 되겠느냐"면서 "삼권분립에 어긋나고 우리 헌법 정신에도 반하는 짓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복지를 지원하는 만고불변의 원칙은 '필요한 사람한테' '필요한 만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국민에게 공짜 습관 들이고 아무런 인과 없는 이들에게 나눠주기식의 나라 세금을 썼다간 (재정파탄 난) 남미 국가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포퓰리즘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유 전 부총리는 "주더라도 꼭 필요한 사람한테 줄 생각을 해야지,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은 반대다"라며 "국가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부자들도 받고 저도 받을 텐데, 그렇게 고맙다는 생각으로 받을 것 같나"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정부가 악화일로의 재정 문제를 이유로 민생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난색을 보이는 상황에서도 구체적인 집행 대상과 시기, 방식 등을 담는 '처분적 법률' 형태로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최대한 신속하게 현금 살포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국회가 행정부를 거치지 않고, 입법을 통해 바로 집행할 수 있도록 '처분'까지 직접 내리겠다는 뜻이다.

    다만, 민주당은 묻지마 식 현금 살포에 반대 목소리가 잇따르자 '선별 지급' 협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이달 말 (22대 총선) 당선자 총회 워크숍에서 보고하고 총의가 모이면 개원 즉시 발의할 것"이라며 "전 국민 보편 지급이 당의 입장이지만 어려운 분들에게 지원을 집중하자는 의견에는 얼마든지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을 통한 '환급가능형 세액공제' 카드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정부의 '유가환급금' 사례처럼 추경 편성 없이 현금환급 형태로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직 경제사령탑들은 민주당이 지원금 지급을 위해 추진하려는 처분적 법률 형태의 법안 발의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 전 부총리는 "법률 지식 없이 보더라도 이건 국회가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행정-입법 간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도 안 맞는다"라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법률 형태라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단호하게 행사하고, 행정부는 위헌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입법이나 집행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처분적 법률 형태가 아닌 특별법 제정이나 조특법 개정 등 다양한 우회 방법을 들여다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거부권, 위헌 소송 등 장애물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처분적 법률은 특수한 상황에서 일정한 범위 내에만 적용하는 것인데 민생지원금법은 위헌 소지가 있고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 기간이던 지난 3월24일 서울 송파구의 한 전통시장을 찾아 '전 국민 25만원' 피켓을 든 같은 당 후보들과 유세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돈을 공짜로 준다는데 국민 여론도 냉랭하다. 이달 2일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생지원금 지급에 '반대한다'(48%)는 응답이 '찬성'(46%)보다 높았다. 

    경제연구기관들의 분석도 호의적이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3일 펴낸 현안 분석보고서에서 "부양책이 오히려 현재 안정화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며 민생회복지원금에 우회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경제학자들의 견해도 마찬가지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추경을 편성하면 재정 건전성은 더욱 나빠지고, 그러잖아도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힘든 국가·가계에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교수는 "민주당의 민생지원 포퓰리즘 법안은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편이든 선별이든 수십조 원의 재정 집행이 불가피한 만큼 물가 자극 우려와 함께 국가 재정을 크게 악화시킬 것이라는 의견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채무는 1126조7000억 원으로 1년 사이 60조 원 가까이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율도 처음으로 50%를 넘어 50.4%를 기록했다.

    올해도 여전한 세수 감소 여파로 나라 살림을 나타내는 지표인 관리재정수지가 75조3000억 원 적자를 보이고 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정부가 거둬들인 돈보다 지출한 돈과 앞으로 지출해야 할 돈이 많아 빚이 더 늘어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