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국무총리 등 줄탄핵 정치적 혼란이 경제 위기 가중트럼프 2기 정부의 보호무역 강화… 韓 경제 충격 예고환율 급등 부동산 대출 부실·금융 불안정성 심화… "불확실성 대응 절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애리조나주에 있는 멕시코와의 남부 국경 장벽 인근에서 연설하고 있다. 240823 AP/뉴시스.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애리조나주에 있는 멕시코와의 남부 국경 장벽 인근에서 연설하고 있다. 240823 AP/뉴시스. ⓒ뉴시스
    두 마리의 회색 코뿔소(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쉽게 간과되는 위험 요소)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내수와 투자 등 주요 경제 지표에 연달아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 그리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겹치면서 경제 위기론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하며 정치적 불안정이 극에 달한 상태다. 일명 쌍특검법(내란일반특검·김건희특검법) 거부 문제 등을 놓고 '대행의 대행'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마저 탄핵하려 벼르고 있다.

    주요 외신들도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수출 의존 국가인 한국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한국의 경제 성장 속도가 둔화되는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를 더욱 압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수출 둔화와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혼란이 경제적 위험을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정치적 위기가 이미 성장 둔화와 수출 우려에 직면해 있는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심화되는 국내 정치 혼란은 원·달러 환율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로 끌어올리며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투매를 촉발시키는 등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외환 당국이 환율 방어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계엄 이후 지난 413일 동안 시티그룹과 스탠다드차티드 등 해외 투자은행들의 원·달러 환율 전망치는 내년 1분기 1435원, 2분기 1440원, 3분기 1445원으로 나타났다. 노무라은행은 내년 3분기 환율이 1500원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으며, 웰스파고는 3분기에는 1460원대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악의 경우 원·달러 환율 1500원 돌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KDI는 "34%의 환율 변동은 통상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도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이는 민간 소비 위축과 기업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져 투자 및 고용 감소를 유발하며 내수 경제의 부진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해 국민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 둔화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은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면 외환위기의 위험이 커지면서 환율이 1500원대 이상으로 높아질 가능성은 물론, 1% 미만의 성장률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 ▲ 부산항 수출 컨테이너 모습ⓒ연합뉴스
    ▲ 부산항 수출 컨테이너 모습ⓒ연합뉴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의 2기 행정부 출범도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겐 큰 충격이며 경제 전반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멕시코·캐나다(25%)와 중국(추가 10%)에 대한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집권 1기 때보다 강력한 관세 정책을 예고한 것이다. 마약과 불법 이민자 문제를 빌미로 중국과 멕시코는 물론, 우방국으로 꼽히는 캐나다까지 대상에 포함시킨 점에서 한국 역시 트럼프발 통상 불확실성의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10~20% 보편 관세 부과 공약도 우리나라에 예외 없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가 대미 무역흑자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관세 공세를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이 20%의 보편 관세를 매길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은 최대 13.1%까지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는 최대 8.3%, 자동차는 최대 13.6%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부가가치는 최대 10조6000억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KIEP는 대미 수출액이 304억달러(약 42조원), 전체 수출액은 448억달러(약 62조원)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외에도 건설·부동산 관련 대출 부실 지표들이 계속해서 악화되면서 우리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기획재정위원회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금융업권별 건설·부동산업 기업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현재 전체 금융권의 부동산업 대출 잔액은 512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국은행이 해당 통계를 금융업권별로 나누어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출 규모뿐만 아니라 부실 대출 지표에서도 통계 작성 이래 최고 기록이 속출하고 있다. 비은행권의 건설·부동산업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올해 3분기 기준 각각 8.94%, 6.85%로, 2015년 1분기 관련 통계 집계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하향 조정한 경기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2.0%로 하향 조정했으며 한국은행도 1.9%로 낮췄다. 골드만삭스도 성장률을 1.8%로 하향 조정했다.

    김정현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트럼프 2.0의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에 따라 투자 유출 측면에서의 대응 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은 FTA 체결국으로 보편관세 부과 예외국 또는 차등 부과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외교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관세 인상 리스크에 더해 환율 변동성이 커지거나 교역조건이 불리해지는 경우 기업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이 가속화될 수 있어 대응 노력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가 지정학적 위치나 경제적 위상에 비춰 보면 우리는 강대국은 아니지만 그래도 강중국 정도로서 전략적 지혜를 잘 발휘하는 것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라며 "지정학적, 경제적 측면이나 우리 산업 구조, 남북 관계 대책,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외교, 통상, 안보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분야에서 전략적인 선택과 연대 강화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일호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가 미국의 입장을 눈치 보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협상의 기술이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여러 채널을 동원하고 정부와 기업이 함께 경제 외교를 한다거나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